[조수정의 포토에세이]60년 연인(鳶人)-초양(抄洋) 리기태 연 명장
-연과 함께한 60년, 연 명장 초양(抄洋) 리기태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대한민국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유일의 방패연 원형기법 보유자 리기태(67·한국연협회 회장) 명장. 그는 국내 유일 전통 연 원형기법 보유자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연을 만들고, 날릴 수 있는 방패연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북촌의 터줏대감인 그의 호는 ‘초양(抄洋)’입니다. 대나무로 오대양을 다스리라는 뜻입니다. 그는 댓살을 배가 부르지 않게 평평하게 만들어도 연이 잘 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이 방법에 자신의 호를 붙였습니다. 그가 고안한 방법대로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연을 만들고 날릴 수 있습니다. 반평생 넘게 연과 함께 지내온 명장만이 일궈낼 수 있는 집념입니다. 그는 6.25전쟁 중 서울 청계천 무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처음 연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그가 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어쩌면 집안 내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시대 후기의 방패연 원형기법을 보유한 1대 스승이자 조부인 이천석, 2대 스승인 부친 가산(佳山) 이용안 선생으로부터 대대로 이어 내려온 원형기법을 전수받았습니다. 리 명장의 조부와 부친께서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 연을 구현한 명인이셨습니다. 두 분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등짐에 연을 꽁꽁 숨겨 산과 들로 다니며 하늘 높이 연을 날렸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6·25전쟁 때문에 서울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한강다리도 끊어지고, 놀이라고는 기껏 해봐야 썰매타기, 자치기, 팽이치기, 사방치기, 연날리기 정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좋아했던 놀이가 연날리기였어요.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연을 통해 충족했습니다. 그때부터 연이 좋았습니다.” 그는 전통연에 대한 애정을 한마디 표현했다. “연과 함께하면 하늘이 다 내 것입니다.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그가 만든 초양법은 정부와 학교,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나아가 외국에서도 이를 배우고 만들어 날리고 있습니다.
그는 연을 만들기 전 언제나 목욕재계(沐浴齋戒)합니다. 그리고 주로 조용한 밤과 새벽시간을 이용해 연을 만듭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연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손이 많이 가는 연을 만들 때는 이틀간 잠 한숨 못자기도 합니다. 그는 오롯이 연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명장의 삶이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한 명장과 연의 인연이 이렇듯 길고 질깁니다. 현역 시인 중 최고령인 후백 황금찬(100)은 그를 위해 시를 남겼습니다. ‘연을 날리며’ 구름의 기인
그의 연실과 얼레를 보라 날려보내라 모든 불행을 연에 실어 끝이 없어라
우리들의 내일을 내일의 병든 구름을 실어가라 그리고 청징한 우리들의 하늘을 연이여 실어오라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