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대형 뮤지컬 '미다스의 손' 왕용범이 소극장에 돌아온 이유…'밑바닥에서'

등록 2017-03-05 10:15:25   최종수정 2017-03-13 10:33:46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왕용범 연출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3.0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왕용범(43)은 대형뮤지컬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몇 안 되는 연출가다. 뮤지컬 '햄릿' '잭더리퍼' '삼총사' '보니앤클라이드' 등 재창작에 가까운 대형 라이선스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극장 뮤지컬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2014년 초연해 흥행과 비평을 모두 잡은 대형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명실상부 톱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왕 연출의 성공 근원에는 2005년 대학로에 소극장 창작 뮤지컬의 신화로 통한 '밑바닥에서'가 있다. 러시아 극작가 막심 고리키의 1902년 희곡 '밤 주막'을 각색한 이 작품은 하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가슴 곳곳을 저릿하게 만든다.   

 그 해 '제11회 한국 뮤지컬 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4개 부문 노미네이트됐고 음악상(음악감독 박용전)을 받았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왕 연출은 10년여 만에 다시 연출하는 '밑바닥에서'에 대해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프랑켄슈타인' 이상으로 애정이 넘친다고 했다.

 랩뮤지컬을 표방한 '서푼짜리 오페라'로 주목 받은 1990년대 후반부터 연출가로 활약한 그는 "데뷔 이후 대극장 창작을 해야겠다는 미션이 있었는데 10년 전 '밑바닥에서'는 제게 그런 기회를 준 작품"이라고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왕용범 연출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3.05.

 [email protected]
"'밑바닥에서' 이후부터는 다 의뢰받은 작품을 연출했어요. '밑바닥에서' 이후 10년 만에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작품이 '프랑켄슈타인'이었고요. 올해 여름 '벤허'를 시작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라인업을 준비해놓았는데, 지난 10년은 저를 보여주기 위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좀 더 훌륭한 작품을 펼쳐나가는 때죠. 지금이 중요한 반환점 시기라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그게 '밑바닥에서'를 다시 연출하게 된 이유죠."

 '밑바닥에서'는 소극장 작품이지만 대극장 작품 이상으로 배우들의 체력적, 정신적 에너지의 소비가 큰 뮤지컬이다. 2015년 '프랑켄슈타인' 재공연 당시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괴물 역에 발탁된 최우혁이 '밑바닥에서'의 주역 페페르를 맡았는데 "액션이 많고 거칠고 역동적이라 더 힘들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만큼 왕 연출을 비롯해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작품성과 완성도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왕 연출과 호흡을 맞춰온 이성준 음악감독, 홍유선 안무감독, 서숙진 무대디자이너, 민경수 조명디자이너, 권도경 음향디자이너, 한정임 의상디자이너 등 대극장에서 이름 난 스태프들이 그대로 참여했다. 불황 등을 이유로 각종 명목의 할인이 넘치는 다른 대학로 뮤지컬, 연극과 달리 정가(6만원)를 고집할 수 있는 까닭이다.

 "관객분들을 생각하면 할인을 하고 싶죠, 그런데 보통 100% 매출에서 손익분기점을 30~40%로 잡는데 저희는 70%에요. 배우, 스태프들 다 대극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인데 (출연료 등을) 상당히 양보를 해주셨어요. 다른 건 더 이상 낮추지 못하겠더라고요. 우리가 원하는 질을 선보이려면 최소한의 투자는 이뤄져야 하거든요. 할인을 하지 않는 건 거만함이 아니에요."

 왕 연출은 '삼총사' '로빈훗' 등에서 증명한 것처럼 자신의 관심을 대중적으로 잘 버무리는 장기를 가졌다. 하지만 각색 능력까지 공인 받아 '작가'로 인정받은 '프랑켄슈타인' 전까지 대중적인 코드의 작품들로 한때는 뮤지컬계에서 일부 저평가 받거나 대중적인 문법에 치우친 연출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왕용범 연출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3.05.

 [email protected]
왕 연출은 "오해가 아니다"라고 웃었다. "의뢰 받은 작품들로 생긴 인상인데 그런 콘셉트를 프로덕션에서 원했어요. 근데 그런 의뢰를 구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에고를 담고 싶지 않겠어요. 하지만 의뢰 받은 작품에 한해서는 제 것을 양보하고 상업성에 부흥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이 성공을 했죠. 다행이었어요. 제 것을 하는 것보다 의뢰 받은 작품이 더 힘들거든요."

 왕 연출에 대한 또 다른 주된 인상 중 하나는 '아이돌 조련사'라는 것이다. 슈퍼주니어 규현, 비스트 양요섭, 빅스 켄 등이 그의 무대를 거쳐 뮤지컬배우로 발돋움했다.

 "일본은 뮤지컬 무대에서 아이돌과 개그맨 등의 위상이 높아요. '준비된 스타'라는 거죠. 한국에서는 진지한 작품에 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이 들어가니 시너지가 안 생기는데,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작품에 나오면 좋은 시너지가 나오죠. 분명한 건 그들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는 거예요. 제 무대에 서는 순간 제 배우가 되니, 억울한 부분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방어해줘야죠."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일본으로 라이선스 수출, 지난달 도쿄 닛세이 극장에 올랐다. 일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도호와 호리프로가 공동 제작했다. 그간 몇몇 창작 뮤지컬의 판권이 일본에 팔린 적이 있으나 10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건 '프랑켄슈타인'이 처음이었다.

 공연 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앙코르도 확정됐다. 일본 내 한류가 잠잠한 상황에서 거둔 쾌거라 현지에서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류의 하나라기보다 '왕용범 브랜드'가 통했다는 분석이 많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민간 외교관 역도 맡았다. "프로그램북에 썼어요. 한국과 일본이 많은 갈등을 겪지만 이 갈등의 끝에 평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왕용범 연출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3.05.

 [email protected]
예술가가 정치적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왕 연출의 작품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두 도시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로빈훗' '조로' 등 볼거리가 가득한 대형 뮤지컬에서도 민중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로빈훗' 때는 소모되고 쓸쓸해지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추앙 받는 영웅이었다가 쓸쓸한 마지막을 보낸 분도 생각났고요. 낭만적인 작품을 원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아직도 고민이에요."

 '밑바닥에서'는 특히 초연 당시 작품의 분위기가 화두가 됐던 작품이다. 뮤지컬하면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쇼적인 정서가 강했던 당시, 비극으로 뮤지컬을 만들었으니 회의적인 반응은 당연했다. 

 "저는 작품의 울림이 강하면 뮤지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밑바닥에서'를 많은 분들이 좋아하셔서 그런 소재도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죠. 하지만 그런 소재가 늘 성공만 하는 것이 아니죠. 작품의 톤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이에요."

 '밑바닥에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의 가장 큰 부분은 '가난에서 오는 절망'이다. 뮤지컬은 물질적인 가난보다 '내면의 밑바닥'을 다룬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왕용범 연출가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레스토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3.05.

 [email protected]
"더 이상 가난을 가지고 밑바닥을 논하는 건 시대착오라고 생각해요.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절망하고 한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높은 현실의 벽 때문에 한숨이 나오거든요. 요즘 젊은이들이 특히 그걸 절감하고 있잖아요."

 왕 연출은 이번 '밑바닥에서' 타나 역을 맡은 배우이자 아내인 서지영과  결혼한 지 10년이 됐음에도 여전히 신혼 부부 못지않은 애정을 자랑한다. 뮤지컬계에서 유명한 잉꼬 커플이다. 여전히 서지영이 자신의 뮤즈라는 왕 연출은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같이 고민하고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이 결과물을 만들거든요."

 점차 그를 롤 모델로 삼는 후배 연출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왕용범 프로덕션을 차리고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뚝심 있게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아직 산업화가 덜 된 뮤지컬 시장에서 쉽지 않은 역이기 때문이다. 

 "연출가뿐 아니라 뮤지컬을 제작하는 창작자들이 좀 더 용기 있게 작품을 위한 선택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과연 그렇게 살아 왔는지 반성하고 있는데 이번 '밑바닥에서'를 통해 초심을 보여주고 싶어요. 후배들이 더 용기를 가질 수 있게요. 결국은 훌륭한 작품이 관객을 불러요. 평범하지만 진리죠." 오는 9일부터 5월21일까지 대학로 학전 블루.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