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속도내는 中 vs '독소조항' 마련한 美…아태 경제패권 승자는?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16개국이 참가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논의에 속도를 내면서 연내 타결 가능성이 전망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밀리자 RCEP을 통해 경제 위기 돌파구를 마련하고 아태 지역에서 경제 패권을 잡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RCEP은 한·중·일 3개국과 호주·뉴질랜드·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 등 총 16개국의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거대 FTA로, 역내 인구는 세계 인구의 절반인 35억명에 달하며 경제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약 25조 1000억달러)에 이른다. 타결 된다면 미국이 빠진 아태 지역 11개국간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역내 인구(약 5억명)와 GDP(약 10조 6000억달러)를 크게 능가하는 거대 경제블록이 탄생하게 된다. RCEP 협상이 시작된 것은 2012년 11월로, 중국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아태 지역의 경제패권을 쥐기 위해 2008년 TPP를 추진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RCEP을 들고 나왔다. 지난 5년여간 RCEP 교섭은 지지부진 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중일관계 악화다. 일본이 2012년 중일간 영유권 분쟁지인 센카쿠(尖閣)제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고, 이어 2013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등 영토·역사 문제로 양국 관계는 1972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미국 중심으로 세계 무역질서를 재편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중국과 일본은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이달 25일~27일 경제인 500여명을 이끌고 2012년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명분은 중일평화우호조약 40주년(23일)을 기념한 방중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압박으로 양국이 경제 문제에서 의기투합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그간 미국 주도의 TPP를 통해 아태 지역 맹주를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려 했기에 RCEP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TPP에서 탈퇴하자 태도가 바꼈다. 일본은 트럼프의 TPP 탈퇴 후에도 11개국간 TPP타결을 이끌었지만, 미국이 빠진 TPP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RCEP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의기투합에도 RCEP 조기 타결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권이 거대 단일 무역협정으로 묶이게 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들어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TPP 복원에 나섰다는 외신 분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TPP를 탈퇴했지만, TPP회원국들과 양자 FTA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TPP 협정을 재단장하려 한다고 최근 지적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올 9월 말 멕시코,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타결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개정안에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조항'을 넣었다. 이 조항은 '상대국이 중국과 FTA를 체결하면 미국은 협정에서 탈퇴한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독소조항'으로, 무역협정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 하라는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독소조항’을 나프타 재협상에서뿐 아니라, 일본, EU, 영국 등 다른 동맹국과의 무역 협상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과의 양자 FTA를 막는 '독소조항'이 다국간 협정인 RCEP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법률적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들은 트럼프가 결국은 RCEP에 있어서도 '독소조항' 적용을 관철시키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RCEP 회원국들과 양자 FTA를 체결하면서 독소조항을 관철시킨다면, 아태 지역 경제패권의 승자는 누가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 RCEP이 넘어야할 장벽은 ‘독소조항’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RCEP조기 타결에 서두르지만 아직까지 회원국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은 RCEP을 통해 역내 관세장벽을 최대한 낮추려 하지만, 중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관세 인하 등에 반발하고 있으며, 인도는 관세를 낮추면 중국산 수입품으로 자국 산업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을 우려해 조기 타결에 신중한 입장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