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신유청 "우리 안에 있는 장벽 한방에 무너뜨리면 좋겠어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연출가파트 투까지 장장 8시간 공연동성애·인종·종교 등 다양한 이야기 담아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26일까지
장장 8시간에 달하는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중 '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가 지난달 26일 베일을 벗었다. 미국의 극작가 토니 커쉬너의 대표작으로 동성애, 인종, 종교, 정치, 환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극 '와이프'·'그을린 사랑' 등으로 주목받아온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다. 극은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에 걸린 전 드랙퀸 '프라이어'와 그의 동성 연인 '루이스', 몰몬교로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남자 '조'와 약물에 중독된 그의 아내 '하퍼', 극우 보수주의자이며 권력에 집착하는 변호사 '로이' 등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뤄진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반동성애적 분위기의 사회 속에 신체적·심리적으로 버텨야 했던 동성애자들의 모습을 은유적 서사로 풀어냈다. ◆파트 투까지 장장 8시간 공연…"이미 검증된 시간, 알차게" 지난 1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신 연출은 "다음 작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읽었는데, 다음 스텝이 놓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20 백상예술대상'에서 백상연극상을 안긴 '그을린 사랑' 등 기존 작품들과도 결이 맞닿아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역사를 다룬 '와이프', 참혹한 비극이 종결되는 시점에 발생하는 미완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을린 사랑' 등 그는 사회적 소수자에 주목해왔다. 그는 "저는 작품을 보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소수자, 차별 속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물론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작업이 있었기에 문제에 직면하며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와이프'와 '그을린 사랑'을 합치니까 이 작품에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 모든 게 포함돼있는 작품을 찾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파트 원만 해도 3시간45분의 러닝타임이며, 파트 투를 합해 8시간에 달한다. 워낙 긴 공연 시간에 처음엔 파트 원과 파트 투를 함께 공연하는 방안도 궁리했다.
"사실 한 시간짜리 공연도 지루할 수 있잖아요. 4시간을 어떻게 가치 있게, 좋은 만남으로 순간순간 만나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극장에 있는 시간은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니까 '이 작품은 네 시간이어야만 해'라는 관객들의 반응이 나올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죠." ◆"'프라이어', 정경호 배우 딱 떠올라…배우 장벽 없애고파" 신 연출은 이번 작품해석의 틀로 성서를 택했다.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소수자들의 사랑과 삶을 그리지만, 성서를 바탕으로 원작이 내포하는 보편적인 상징과 은유를 파고들었다.
"초연 당시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에도,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에게도 모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작품이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이 장벽에 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누군가의 시선, 비난이 이뤄지는 건 장벽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끝에는 우리 마음에 있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내 안에 그놈을 제거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 작품은 배우 정경호의 첫 연극 데뷔 무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에이즈에 걸린 전 드랙퀸이자 성 소수자 '프라이어'로 열연한다. 신유청은 대학 2년 후배인 정경호와 전부터 연극을 같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프라이어'는 정경호 배우가 딱 떠올랐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아름다운 모습을 갖고 있고, 어떤 시각으로 보든지 다양성을 갖고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며 "정경호 배우도 연극에 대한 염원이 있었고 이 작품 영화를 보고 너무 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8시간 연극이면 몇 개월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은 없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성 소수자 등의 이야기를 주로 다뤄왔지만, 이를 꼭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시작한 건 아니라고 했다. "이를 통해서 더 큰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흐름을 쭉 이어가는 창작진을 보면 부러운데, 제가 본래 무언가 꼭 하고 싶다는 게 없어요. 이게 장점이라고 하면 사심 하나 없이 그 작품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의 색깔과 작품의 결이 충돌될 때도 있잖아요. 저를 싹 지우고 온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마치 초콜릿에 흠뻑 빠지듯 들어갔다 나오죠." '파트 투: 페레스트로이카(러시아어로 '개혁'을 의미)'는 내년 2월에 관객들을 만나며, 같은 기간 파트 원도 함께 공연할 예정이다. 배우들은 파트 원 공연을 하면서 이달부터 파트 투 연습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신 연출은 "'프라이어'가 만나게 되는 세상, 그 경험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라며 "장벽을 철폐하는 과정이 쭉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