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발가락으로 호른 부는 펠릭스 클리저 "약점은 강점, 한계는 없어요"
9일 내한 공연...예술의전당 IBK챔버홀서 리사이틀5살 때 호른에 매료…"다양한 감정 표현""음악 연주 이유? 사람들에게 행복 전파"본머스 심포니서 활동…"꿈 향해 싸워야"
독일 출신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31)는 손 대신 발가락으로 호른을 연주한다. 태어날 때부터 양팔이 없었던 그는 지지대로 호른을 받치고 왼발로 밸브를 조작한다. 나팔(벨)에서 음색과 음량에 변화를 주는 오른손의 역할은 입술이 대신한다. 클리저는 오는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뉴시스와 서면으로 만난 그는 "제게 살아갈 힘을 주는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이 있다는 것"이라며 "사람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리 큰 약점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독일 중부의 괴팅겐에서 태어난 클리저는 5살 때 우연히 듣게 된 호른의 음색에 매료됐다. 무작정 부모님을 졸라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길고 정교한 호흡을 해야 하는 호른을 다루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는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13살이던 2004년 하노버 예술대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 입학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그는 "언제 처음 호른을 들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호른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호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음색의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호른 연주자가 한 음만 연주해도 단번에 매우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다른 악기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했다. "호른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좋아요. 어쩌면 그래서 어린 나이에 호른이라는 악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사람들에겐 인생이 '단거리 경주 같지만, 그에겐 '장거리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는 길어야 5~10년"이라며 "제가 30~40년에 걸쳐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거대한 목표엔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많은 시간"이라고 밝혔다. 장애는 꿈을 막지 못했지만, 좌절의 순간은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악기를 배우다 보면 자주 실망한다. 모든 음악가가 마찬가지"라고 했다. "관건은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죠. 포기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둘 중 하나에요. 인생의 모든 일이 비슷하죠. 그냥 주저앉을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진 자신의 결정에 달렸어요.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삶이 재미있죠." 악기 연습에만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연주자는 더 멀리 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연주자보다 우선은 예술가임을 강조했다. "예술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에요. 그러자면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죠. 음악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삶에서 축적된 성품과 경험이죠."
"사람들의 삶에 기쁨과 용기를 주기 위해 연주해요. 우리는 목표나 과정보다 결과만 바라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죠. 저는 누군가의 겉모습이나 이룬 성취를 보지 않아요. 연주자의 목표는 훌륭한 독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최대한 통달하고 삶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이어야 해요." 클리저는 현재 영국 본머스 심포니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실내악 프로젝트와 교향악콘서트에 더해 음악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2018년부턴 독일 뮌스터 국립음대에서 호른을 가르치고 있다. "누군가가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장점을 찾는 과정은 재미있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다"고 말했다. OHMI(One-Handed Musical Instrument Trust) 홍보대사인 그는 양팔을 쓸 수 없는 음악가를 위한 악기 제작 지원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그는 "무언가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면,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그 꿈을 향해 힘써 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있어요. 꿈을 가진다는 건 스스로 책임진다는 걸 의미하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마세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이 점을 기억하면 훨씬 흥미로운 일을 삶에서 경험할 수 있어요."
그는 "슈만의 곡은 첼로를 위한 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 호른을 위해 만들어졌다. 베토벤 소나타도 마찬가지"라며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이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도 연주한다. 뒤카의 '빌라넬레'는 6분 가량의 짧은 곡이지만 그 안에 호른의 모든 개성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관객을 사랑해요. 매우 친절하고 열정이 넘치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제한하지 말고 감정을 자유롭게 펼쳐주세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