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정 "할 수 있을 때까지 춤춰야죠"…13년만에 새 앨범
박남정은 누구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가수가 흔치 않던 80년대 후반 그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현란하게 춤 추면서 안정적인 가창이 가능한 솔로 가수가 전무하다시피한 현재 우리 가요계를 떠올리면 그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새삼 알 수 있다. 88년에 데뷔한 그는 이듬해 MBC 가요대상을 받았다.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한국 가요계가 90년대 초 전에 없던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다양한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박남정은 그렇게 가요계 중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95년 6집까지 매년 앨범을 내놨던 그는 7집 앨범을 내는 데 10년이 걸렸다. 박남정은 은퇴하지도 활동을 멈추지도 않았지만, 더이상 신곡을 내는 가수로서 동력은 없어보였다. 그런 박남정이 새 앨범을 낸다. 7집 '어게인 2004'가 2004년에 나왔으니까 13년 만이다. 그는 타이틀곡 '멀리가요'를 5일 먼저 공개한 뒤 4월 중 이 노래 포함 네 곡이 담긴 미니앨범을 발표한다. 유명 작곡가 돈스파이크와 함께 작업했다는 것, '싱글 선공개 후 미니앨범 발표'라는 트렌디한 홍보 방식을 택했다는 것에서 느껴지듯 박남정은 '박남정은 여전히 가수'라는 걸 말하는 듯하다. 그는 "아주 화려하게, 스타성이 있는 그런 느낌의 가수만 가수가 아니다. 자기가 노래하고 있으면 가수다. 춤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싶다. 무대에 설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팬들이 나를 계속 찾아준다면 어떤 제한을 두지 않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13년 만에 새 앨범이다. "굉장히 늦은 감이 있다. 진작에 했었어야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다시 앨범을 낸 것에 감사한다. 나도 이제 곧 데뷔 30주년이 되는데, 오랜 세월 지나서도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다 팬 덕분이다." -활동을 중단한 적은 없지만, 앨범을 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신보를 발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역시 앨범을 낸 이유다. 꼭 앨범을 내지 않아도 현재 활동에 지장이 없지 않나. "팬들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었다. 나도 그렇지만 다들 아이를 낳고 키웠다. 이제 그들도 나도 서서히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가 됐다. 자기만의 시간이 생기는 거다. 이때 다시 한번 뭉치고 싶었다. 모두 답답하고 응어리진 시간을 보내왔을텐데 내 앨범을 통해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새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은 꾸준히 있었는데, 결국 4월에 돼서야 나오게 됐다. 왜 이렇게 늦어졌나. "다시 앨범을 낸다는 건 여러가지를 신경 써야 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앨범을 만드는 방식, 홍보를 하는 방법 등을 공부해야 했다. 또 오랜만에 나오는 앨범이니까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었고, 곡이 완성됐어도 더 보완한 뒤 발표하려다보니 다소 늦게 됐다." -만족하는 앨범이 나온 것 같나. "어떻게 100% 만족하겠나. 100번 듣고 완성해도 101번째 들으면 안 보였던 게 또 보인다. 그렇게 하면 끝이 없다. 다만 오랜만에 나오는 앨범이니까, 내 노래를 듣는 분들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박남정하면 역시 춤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 타이틀은 발라드 '멀리가요'다. 왜 이런 선택을 했나.
-발라드만 깊이를 담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멀리가요'가 다른 발라드와 차별화하는 지점이 있나. "'멀리가요'는 단순 사랑 노래가 아니다. 부부의 애환을 담은 곡이다. 내 팬들은 중·장년층이니까,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넣어 뭉클한 노래를 만들고자 했다." -돈스파이크와 작업했다. 박남정과 돈스파이크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인연인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KBS '불후의 명곡'에서 바다가 '사랑의 불시착'을 새롭게 편곡해서 불렀다. 그 편곡이 아주 신선하고 쇼킹하게 다가왔다. 편곡자가 누군지 알아보니 돈스파이크라고 하더라. 새 앨범을 하게 되면 돈스파이크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가 생겨 함께 작업하게 됐다." -"좋은 기회"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하다. 직접 연락했나. "그렇다.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했고, 돈스파이크는 흔쾌히 내 제안에 응했다." -이 말을 듣고나니까 이번 앨범을 만드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맞다. 7집까지는 항상 앨범 제작을 제안받는 입장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 변화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하다. "음…. 세월이 흐르고 있었고, 내가 가요계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무언가 내게 독촉하는 것 같았다.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수동적으로 움직였다면, 능동적으로 뭔가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과 싸움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의 변화를 촉발한 계기 같은 게 있나.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앨범 작업을 하기 전부터 삶의 습관을 바꿔나가고 있었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몸 관리 혹은 정신 관리가 필요한데, 그걸 위해서 매일 빼놓지 않고 해나갈 평생 습관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운동을 한다고 하면 일정 기간 무리해서 강도 높게 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곧 지쳐서 안 하게 되더라. 그게 반복되니까 쉬운 것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동네 한 바퀴를 돌자는 식으로 행동을 변화시켰다."
"앨범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제대로 작업해서 대대적으로 발표해야 하는 게 앨범이었다. 그게 부담스러우니까 자꾸 뒤로 미룬 거다. 하지만 작은 걸 꾸준히 하자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더라. 꾸준히 작업해서 싱글로 발표하고, 그걸 모아서 미니앨범을 만들고, 또 그걸 모아서 정규앨범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부담이 줄었다. 그때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앨범은 낸다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목표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내 음악으로 소통하고, 그 소통을 통해 발전하는 거다. 과거에는 기성가수들이 오랜만에 앨범 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도 안 들어줄 걸 왜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누가 알아줘야 하는 게 아니다. 가수로서 본분은 음악을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발전하는 거라는 걸 느꼈다." -그래도 대중의 반응에 대한 걱정이 없을 수는 없지 않나. "물론이다. 걱정이 왜 안 되겠나. 그러나 더 걱정되는 건 성대다. 가수는 타고 나야 한다. 그러나 난 타고난 것 같지는 않다. 나름 노력했지만, 성대가 약하다.(웃음) 춤은 문제가 없는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해보자. 박남정 하면 춤이고, 춤하면 박남정 아닌가. 요즘 아이돌들의 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내가 보기에는 좀 우습다.(웃음) 농담이다. 지금 그들의 춤을 보면 퀄리티가 아주 높다. 내가 어떻게 그걸 따라가겠나. 그러나 그들의 춤과 내 춤에는 차이가 있다. 아이돌은 연습실에서 춤을 배우지만, 난 배운 게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웃음) 내가 한창 춤을 출 때는 참고할 만한 게 없었다. 지금은 유튜브 같은 걸 통해서 다 배울 수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게 없지 않았나. 기껏해야 라이브 카페 같이 스크린이 있는 곳에 가야 겨우 해외 영상을 볼 수 있었고, 그걸 본 뒤에 혼자 연습했다. 연습실도 아니다. 지하철 복도에서 연습하고 한강 고수부지에서 춤췄다. 그들의 춤과 나의 춤은 맥락이 다르다." -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웃음) "내가 나이가 많다는 걸 사람들이 모르면 춤 동호회나 춤추는 무리에 섞여서 같이 연습하고 춤추고 싶은 열정이 아직도 있다. 하지만 다 때가 있는 것 아닌가.(웃음) 사실 이제 아이돌 댄스 흐름에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거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내 이름 걸고 나만의 쇼를 만들어 공연할 계획이다. 큰 공연이 아닌 소극장 공연을 자주 할 거다. 팬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다. 중요한 건 섭외받아 가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는 공연이라는 거다.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서 팬과 소통하면서 더 발전하는 공연을 꾸려가고 싶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