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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슈퍼돼지 '옥자'로 부활한 '봉테일' 유쾌한 반란

등록 2017-06-28 09:18:05   최종수정 2017-11-15 14: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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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간결하고 명쾌하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건 아니다. 은밀하게 드러내는 게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것보다 우위에 있는 방식도 아니다. 중요한 건 합당한 방식으로 정확하게 짚어내는 일이다. '옥자'(감독 봉준호)는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던 '마더'(2009), 넓이를 짐작키 어려웠던 '설국열차'(2013)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목표에 도달한다. 현 세계를 추동하는 시스템을 시종일관 활기차고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그 지적에 설득력까지 갖추는 건 아무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다.

 '옥자'는 또 다른 거대 동물 영화 '괴물'(2006)처럼 그 자체로 만듦새가 좋은 오락영화이기도 하다(봉 감독의 전작 중 '옥자'와 가장 유사한 맥락의 작품은 역시 '괴물'일 것이다). 새삼스러운 언급이지만, '봉준호 영화'는 달려야 할 때와 걸어야 할 때를 안다. 당겨야 할 때와 밀어야 할 때를 알고, 뜨거워야 할 때와 차가워야 할 때를 안다. '미자가 납치당한 친구 옥자를 구하러 떠난다'라는 평면적 서사는 봉 감독 특유의 세밀한 설정과 촘촘한 구성을 만나 직관적으로 재밌는 작품으로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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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국적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시킨 슈퍼돼지를 세계 26개국 축산업자에게 맡겨 키우게 한다. 미자(안서현)·희봉(변희봉)과 함께 한국의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옥자도 미란도의 작품 중 하나다. 미란도의 CEO 루시(틸다 스윈턴)는 슈퍼돼지를 가공해 식품으로 팔기 직전, 홍보의 일환으로 가장 아름답게 자란 슈퍼돼지를 미국 뉴욕에서 공개하기로 한다. 옥자가 미란도 직원들에 의해 납치당하자 미자는 옥자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직접 뉴욕으로 향한다.

 뛰어난 기술은 때로 감정도 만들어낸다. '옥자'의 중추는 역시 옥자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슈퍼돼지 옥자가 스크린 넘어 관객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을 필요로 하는데, '옥자'의 옥자는 러닝 타임 내내 외관상 어떤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미자와 옥자의 사랑과 우정이 관객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관객 또한 옥자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을 만큼 이 거대 동물이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게 하는 기술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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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소녀와 친구의 모험담이자 멜로드라마다. 권력과 싸우고 돈에 맞서고 일그러진 인간 행태를 일갈하는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방위적으로 세계 중심 체제를 비판하는 풍자극이다. 여기에 비거니즘과 에코페미니즘까지 녹여냈다('옥자'는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정형화한 시선도 비꼰다). '옥자'의 정교한 각본은 봉 감독이 영화 연출가이기 전에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를 알게 한다. 다양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질적일 수 있는 요소들이 어느 것 하나 돌출되지 않게 자연스럽게 오락영화 틀 안에 들어오는 경험을 주는 작품은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작비 5000만 달러 때문이 아니라 봉 감독의 또 한 번 확장된 세계관이 담겼다는 점에서 '옥자'는 대작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 이후 '설국열차'(2013)까지, 때로는 깊게 때로는 넓게 파들어가며 자기 영역을 구축했다. 인류의 미래를 고민한 '설국열차'가 시야를 가장 넓게 확장한 사례였다면, '옥자'는 전작에서 한발 더 나아간 작품이다. 그는 이제 종(種)의 문제를 넘어 세계 전체를 본다. 이를 테면 그는 옥자라는 동물을 이야기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옥자라는 생명에 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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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자'의 유머는 필연적이다. 상영 시간 내내 흐르는 유머는 '옥자'가 메시지에 함몰되는 걸 막는 것과 동시에 이 메시지를 더 명징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번 작품이 전작들과 비교해 더 직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영화인만큼 이 무게감을 상쇄해줄 요소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웃음이다. 이 웃음들은 극 종반부 미자와 옥자 앞에 닥치는 비극의 크기를 극대화한다. 이 극명한 대비가 주는 효과는 관객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게 아니다. 봉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면서 했던 고민들을 관객 또한 비슷하게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독보적인 캐릭터는 없다. 미자·루시·죠니 등 '옥자'의 인간들은 봉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유독 정형화돼 있다. 배우들은 튀지 않지만, 정확한 연기로 관습적 캐릭터마저 살려낸다. 굳은 의지를 담은 눈빛이 인상적인 안서현은 '괴물'의 고아성을 떠올리게 하는 총명한 연기를 선보인다. 틸다 스윈턴은 단 몇 장면만으로도 히스테릭한 사이코패스를 표현하는 내공을 발휘한다. 변희봉·제이크 질렌할·폴 다노·스티븐 연 등도 안정적인 연기로 극을 무리 없이 이끈다.

 '옥자'가 봉 감독의 최고작은 아니다(여전히 그의 최고작은 '살인의 추억'이거나 '괴물' 혹은 '마더'를 꼽기도 할 것이다). 봉준호이기때문에 그 기준이 치솟을 뿐 '옥자'는 감정적이거나 혹은 기술적인 부분 모두에서 높은 만족도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저 그런 스릴러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최근 한국영화계에 '옥자'의 존재는 유독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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