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정의 寫讌]새 영화 '올드마린보이'로 돌아온 '님아' 진모영 감독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로 약 480만 관객을 울린 진모영(47) 감독은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마린보이’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만 4년 공들여 만든 탈북자 머구리이자 한 가장의 인생 이야기다. “사진 설명을 보니 잠수병으로 두 다리를 잘 못 쓰게 된 머구리였습니다. 해산물을 거둬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 다리를 온전히 다 내줘야만 했던 겁니다. 인생이란 것은 그런 것이구나. ‘하나를 내줘야 하나를 얻는....’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흔히 ‘공짜는 없어’라잖아요. 월급쟁이들과 비슷하죠. 청춘을 내주고, 간을 내주고 해야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이죠. 건강을 해치고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고요···.” 진 감독은 주인공을 잡지에 등장한 머구리로 정했다. 이때가 ‘님아’ 개봉 1년 전이었다. 수소문해 “선생님을 찍고 싶다”고 연락하니 흔쾌히 동의해줬다. 그러나 경남 통영의 어느 병원에서 잠수병 치료이던 머구리는 터전인 저도어장의 어업이 시작되는 봄까지도 퇴원을 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머구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탈북자 머구리 박명호씨를 만났다. 박씨는 지난 2006년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북한을 탈출했다. 지금 남과 북의 국경마을인 강원 고성군에서 재래식 머구리로 살고 있다. 60㎏이 넘는 육중한 잠수복을 입고, 한 가닥 공기 줄에 숨줄을 맡긴 채 물속 30m 아래에서 해산물을 잡는다. “우리 촬영합시다”고 하니 박씨는 즉답하지 않았다. "나는 촬영 많이 했고, 남한에서 성공한 머구리로 비치는 것도 싫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럼 우리 그런 것 하지 맙시다. 아저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시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했다.
진 감독은 머구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동해 머구리들의 큰 특징은 투구를 쓰고, 쇠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닌다는 것입니다. 깊은 바다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일합니다. 이것이 생경한 풍경이기도 했으나 그 사람의 마음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배 위에서 기다리는 우리는 대단한 것을 잡아 올리니까 ‘우와!’하며 보는데 사실 물속에서 가느다란 호스 하나에 의지해 작업하는 것이죠. 몸이 60㎏쯤 되는 사람이 투구에 허리 납 벨트, 쇠 신발 등 신으면 120㎏이 됩니다. 물속으로 내려가려면 머리 옆 막대기를 눌러 공기를 빼면 되고, 물 밖으로 올라가려면 공기를 채우면 되는데 이때 호스가 꼬이거나 스크루에 감겨 끊어지는 등 공기를 받을 수 없는 사고가 생기면 그냥 죽는 것입니다. 잠수부 혼자서는 절대 잠수복을 벗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선원이 다이빙해서 잠수부를 잡아 올릴 수도 없거든요. 이런 사고가 가장 무섭습니다. 그래서 서로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선주, 선원, 머구리가 일정한 비율로 수확물에 대한 수익을 나누는데 머구리가 일을 잘 못 하면 모두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머구리의 목숨은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줘야 하죠. 그들이 방심하면 머구리는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 아저씨가 오고 나서도 동네에서 대여섯 명이 죽었다고 했으니까... 머구리들에겐 그게 가장 무서워요. 박씨는 위험한 경계를 목숨 걸고 넘어온 탈북자입니다. 하지만 결국 지금도 여전히 생과 사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것이죠. 이 영화는 가족을 위해 삶을 걸고 싸워나가는 한 남자의 용감한 초상입니다.” 진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을 마음속으로 이렇게 읽는다. 영어로는 '올드마린보이', 한글로는 '아버지의 바다', 한문으로 '苦海(고해)'라고.
영화를 만드는 동안 진 감독은 부친상을 치렀다. 그 때문인지 이 작업은 아버지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됐다고 한다. '올드마린보이'는 진 감독이 KTX 잡지에서 머구리 기사를 만난 지 만 4년이 되는 오는 11월2일 극장 개봉한다. 국내 배급은 CGV 아트하우스가 맡고, 해외 배급은 ‘님아’를 함께한 프랑스 ‘캣앤독스’사가 맡았다. 월드 프리미어는 오는 21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다. 개막작으로 초대됐다. DMZ영화제는 ‘님아’ 제작을 지원했던 영화제이기도 하다. 개막작으로 다시 찾아가는 감회가 새롭다. 전 세계 다큐멘터리 시장은 매년 9~10월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콘텐츠의 생명력은 보통 5~7년. ‘님아’는 아직 전 세계를 다니는 중이다. ‘올드마린보이’가 개봉하면 두 영화로 바쁠 법도 하지만, 진 감독은 ‘바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동료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독립 PD들의 영화와 방송물을 홍보한다. 아프고 어려운 동료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 돕는다. 특히 어떤 보호막도 없이 홀로 방송물을 제작하는 독립 PD들의 인권 향상과 불공정한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1980년대 후반, 그는 ‘전국에서 가장 데모 잘하는 학교’에 다니며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기자가 되고 싶어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PD가 됐다.
KBS에서 비정규직으로 영상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곳에서 방송 산업과 프로그램 연출을 어깨너머로 배웠고, 수년 뒤 선배와 외주 제작사를 차렸다. 이후 10여 년간 TV 방송물을 만들다 2011년 퇴사해 독립창작자가 됐다. KBS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시절은 빛과 그늘이 공존했다. 1999년 7월20일 남양주 불암산에서 방송 프로그램 촬영 중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했고 겨우 탈출해 멀리 도망조차 가지 못한 채 눈앞에서 헬기가 전소되는 것을 바라봤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날, 그는 매년 7월20일을 ‘생환기념일’이라고 명명하고 그날만은 일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었으나 해당 프로그램의 내부 정규 멤버였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중 자칫 죽을 수도 있는 대형 사고를 겪었으나 회사 간부 가운데 그 누구도 그를 위문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매우 불쾌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에게 비정규직 스태프의 인권이나 목숨은 참 부질없는 것이죠.” TV 프로그램 디렉터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전직하게 된 데는 방송사의 계약, 관행, 처우, 저작권 문제 등에 지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방송사는 외주사가 영상 하나를 제작하면 원본을 빼앗고,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든 권리도 가져갔다. 심지어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권리까지도 방송사가 갖는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완벽한 착취였다. 세계적인 경향은 창작자가 모든 권리를 갖는 것이다. (물론 방송사의 월급을 받는 스텝의 저작권은 제외이긴 하다.) TV, 극장 등 여러 상영 방법과 지역, 국가를 망라할 수 있을 정도의 비용을 지급할 때는 저작권을 방송사가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제작비만으로 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져가는 것은 매우 불공정하다고 느꼈던 마흔 살쯤 그 권리를 찾기 위한 작업을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시작했다. 당시 활로를 찾았던 것이 국제공동제작, 극장판 다큐멘터리 등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외주사를 퇴사하고 1인 창작자로 나섰다. 그 뒤 그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종일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DMZ영화제를 찾아 몇 날 며칠 동안 다큐 영화만 봤다. ‘나도 저런 작업을 계속 해왔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큐 영화들이 우스워 보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방송판’이 아니라 ‘극장판’ 다큐는 이거구나” 했다. 그렇게 도전했던 영화가 ‘님아’ 였다. 진 감독이 주로 만드는 분야는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다. 현대 한국인들을 찍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현대사회를 사는 한 인간의 세계를 다루면서 인생 철학, 사회·정치적인 배경을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면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든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족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마음의 병이 될법한 자신의 고통스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놓는다. 점집을 찾아가거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들은 자의 의무들이 생긴다. 그래서 그는 ‘다큐멘터리를 잘 만들면 인간의 깊은 세계를 잘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옛이야기나 자료를 불러오는 것보다 지금 사는 모습을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다.
지금까지 '님아' 주인공인 강계열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그다. 조병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막내딸과 사위가 모시고 있는데 촬영을 위해 서울과 고성군을 4년간 오가며 할머니를 찾는다. 할머니의 삶과 사적인 공간은 불편이 없도록 철저히 보호한다. 서울 서교동 창작집단 917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뒤 ‘올드마린보이’ 편집 과정을 지켜봤다. 진 감독과 현진식 편집감독은 얼마 남지 않은 DMZ영화제를 앞두고 분주하면서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한 남자가, 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이건 감독의 해석이고, 또 이 영화를 만들었던 동기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이냐’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 ‘인생은 이러니 너는 이렇게 하라’는 메시지를 얘기할 권리는 없는 것이고요. 결론은 그런 인생에 대한 헌사입니다. ‘모두 이런 인생을 사는데 당신 인생에도 경의를 표합니다’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스펙터클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각자 느끼고 해석해야 할 부분으로 남겨놓아야겠죠."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