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안전 비상···아이들 먹거리마저 불안하다
이 정도면 재앙이다. 연초부터 ‘브라질 닭고기’ ‘햄버거병’ ‘용가리과자’ ‘살충제 계란’, ‘간염 소시지’ 사태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시중에 판매되는 족발·편육 셋 중 하나가 식중독균·대장균 범벅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고, 온라인과 대형마트에서 유통되는 이유식에서 조차 식중독균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을 허탈하게 했다. 식품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식품제조업체들의 모럴해저드와 정부의 관리 소홀로 국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식품안전 컨트롤타워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를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연초부터 끊임없는 ‘경보음’ 연초에는 브라질의 대형 육가공업체들이 유통기한을 넘긴 썩은 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금지된 화학약품을 쓰고 유통기한을 위조해 수출을 한 사실이 드러나며 파장이 일었다. 브라질은 세계적인 닭고기 산지로, 브라질산 닭고기는 가격이 국산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순살치킨 등의 용도로 많이 쓰였다. 마트 3사가 판매를 중단하고, 식품업계 역시 브라질산 닭고기 발주를 중단했으며 소비자들 역시 브라질산 닭고기를 사용하는 일부 치킨 프랜차이즈 제품을 먹지 않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지난 7월에는 4살 여자아이가 분쇄육으로 만든 햄버거를 먹은 후 신장 기능의 90%를 잃는 일이 벌어져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이후 햄버거뿐만 아니라 안심스테이크, 돈가스 등 분쇄육으로 만든 제품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일부 학교 등에서는 관련 제품을 급식 메뉴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이달 초에는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생이 액체질소가 든 일명 용가리과자를 먹고 위에 5㎝ 크기의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식약처는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액체질소 잔류 식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또 식품첨가물 취급관리 강화안도 발표했다. 살충제 계란 사태는 정부 늑장대응의 완성판이었다. 정부는 전국 양계농가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피프로닐, 비펜트린, 피리다벤, 에톡사졸, 플로페녹수론 등 살충제가 검출된 농장의 계란에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가공육도 문제다. E형 간염을 유발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독일 등 유럽산 돼지고기의 국내 수입량은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34t에 이른다. 햄류는 1t, 베이컨류는 0.1t이었다. 네덜란드산 베이컨류도 2t 수입됐다. E형 간염 바이러스는 70℃ 이상에서 가열해 조리하면 사라지지만, 살라미와 하몽 등은 가열하지 않고 먹는 비가열 제품을 소비자가 먹었을 경우 감염될 수 있다.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거나 설사·황달 등을 앓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임신부의 경우 치사율이 20~2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에는 온라인에서 유통·판매되는 톳환 15개, 다시마환에서 비소와 카드뮴 등이 나와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다. 건강을 위해 구입해 먹는 식품에서조차 유해물질이 나오면서 “먹을 것이 없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은 온라인에서 유통·판매되는 톳환 15개, 다시마환 15개 등 30개 제품을 대상으로 한 중금속(납, 카드뮴, 비소) 시험검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전 제품에서 ‘비소’가 7.1~115.7㎎/㎏ 수준으로 검출됐다. 특히 톳환에서는 ‘카드뮴’도 15개 중 14개(93.3%) 제품에서 0.6~2.3㎎/㎏ 수준으로 검출됐다. 조사대상 제품들은 성인 기준 1일 2~3회, 10~50알 정도를 섭취하도록 제품에 표시돼 있고 어린이는 성인의 절반 용량을 섭취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동 제품의 주요 섭취대상군은 건강한 성인보다 취약계층인 노인층이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이들 제품에 대한 안전기준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 등 취약계층 식탁 ‘위험’
식약처에 따르면 6일 온라인과 대형마트 등에서 유통되는 이유식 등 32개 제품을 수거·검사한 결과 식중독균 등이 검출됐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주요 균의 하나인 황색포도상구균이 나온 제품은 ‘맘마맘마’에서 만든 ‘발아퀴노아 버터넛 남해초맘마’와 ‘닭고기 뉴그린 콜리플라워’다. 충남 천안에 있는 식품 제조 가공업체 ‘순(純)아이밀’의 2개 제품에서는 기준치(10만 마리)를 넘는 25만 마리, 350만 마리의 세균이 각각 나왔다. 식약처는 제품을 모두 폐기 처분했고, 이 업체들은 품목 제조 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소비자들의 충격은 여전하다. 소비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분쇄육 햄버거를 먹은 4살 여자아이가 신장 기능의 90%를 잃고 투석을 하는 일에 이어 용가리과자로 불리는 질소과자를 먹은 12살 남자아이의 위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생기는 등 어린 아이들이 먹거리 안전의 최대 피해자로 떠오르고 있다”며 “취약계층 먹거리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위기감도 크다. 먹거리 안전 문제가 연달아 터져 나오면서 국민들의 비판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먹거리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미봉책에 그쳐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먹거리 안전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31일 ‘살충제 검출 계란 사건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내고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부처 간 업무 위임문제와 책임을 분명히 하고 국가식품안전정책위원회의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총괄기능의 부재, 결과 번복, 부실 검사, 친환경 부실 인증 등으로 국민들의 국가식품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며 “이번 기회에 생산단계 안전관리의 부처 간 위임문제와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체의 모럴해저드, 정부의 허술한 관리로 먹거리 안전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근본적이고 강력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