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판매만 급급 AS 뒷전⑤]"'호갱'되는 韓소비자...보상금도 타국 비해 적어"
"소비자 위한 韓 법적·제도적 체계 부족...소비자 권리 보호해야""할인해주면 수입차 더 사는 소비자들...비도덕적 기업 외면해야""국토부·환경부 검증 인력 등 부족...전문가 늘리고 자체조사 강화"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승용차의 지난해 신규 등록 대수는 26만705대를 기록했다. 전체 승용차 시장의 16.7%에 달하는 수치다. 국내에서 수입차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BMW의 '주행 중 차량 화재' 사태에도 배출가스 조작으로 판매가 중단됐던 폭스바겐과 아우디 등이 다시 시장에 나오면서 수입차 판매는 12% 증가했다. 수입차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는 동시에 차량 결함, 부품 고장, 허위 광고 등 국내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수입차업체들의 행태 역시 드러나고 있지만 수입차 판매율은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와 국내시장에 필요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의 입을 모아봤다. ◇"韓 정부, 소비자 위한 법적·제도적 체계 부재"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위하는 한국 정부의 법적·제도적 체계가 전무한 현재의 상황이 한국 소비자들을 '호갱'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차량 부품 결함이 발견되도 즉각적인 리콜을 하지 않고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수입차 업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국내 점유율과 판매율이 높아지는 이 시점에서 수입차 업체들의 자체적인 자정능력도 요구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한국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관련법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에서는 인당 570만~119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할 때 한국에서는 고객들에게 100만원짜리 바우처를 지급하는데 그쳤다. 배출가스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에서 16조가 쓰이고 한국보다 시장이 작은 캐나다에 2조가 투입될 때 한국에는 약 1000억원이 들어갔을 뿐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BMW 화재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소비자의 권리를 위한 법들이 아직까지 계류 중에 있는데 하루속히 법적 제도를 마련해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수입차 업체가 법을 어겨도 벌금이나 처벌에 대한 정도가 미약하기 때문에 업체가 배짱을 부려도 딱히 처리할 방법이 없고 결국 국내 소비자는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국 같은 경우 업체를 향한 감시 기능도 매우 뛰어나고 미국 정부가 소비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확실한 법적·제도적 체계를 마련해놓고 있다"며 "한국도 겉치레만 하는 부실한 시스템에 목매지 말고 무한대적인 징벌적 배상제 등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한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할인해주면 더 사는 나라...비도덕적 기업 가려내야"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법적인 부분에서도 한국 정부에 부족한 점이 많지만 법적인 면을 떠나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수입차를 향한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문화"라고 밝혔다. 차량 결함이나 고객 기만 등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들이 먼저 나서서 '비도덕적인 기업'이라는 낙인을 찍고 불매운동을 하는 등 해당 업체를 외면하면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기 때문에 보다 긴장하고 정직한 판매를 위해 노력하게 될 텐데 한국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배출가스 조작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폭스바겐 판매량이 절반 이상 줄어든 반면 한국에서는 폭스바겐이 할인해준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매장 전시차량까지 사가면서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며 "외국기업들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면에서 이익만을 따지는데 문제가 발생해도 한국에서는 판매가 계속 잘 되니 한국 소비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수입차업체들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결함 분석·검증할 정부 인력 부족...피해자 위한 소송제도 전무"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한국 자동차 담당 부처들의 무능력함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현재 수입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동차 소송 9건의 변론을 맡고 있다. 2015년 9월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을 시작으로 닛산 '캐시카이' 배출가스 조작, BMW 주행 중 화재, 랜드로버 차량 시동 꺼짐, 만트럭 결함 등의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하 변호사는 "국토교통부의 경우 BMW 화재 뿐만 아니라 다른 수입차 결함 문제에서도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할 인력 수도 부족하고 결함을 분석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다"며 "자체적인 분석·검증을 거치지 않고 제조사의 설명만 듣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나마도 이번 BMW 화재는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 만큼이라도 하는 거고 다른 사소한 건들에 대해서는 결국 제조사가 제시하는 설명만 받아들이고 '문제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낸다"고 덧붙였다. 하 변호사는 환경부의 처리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결함 등의 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분석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제조사의 설명과 자료를 여과없이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수입차 업체들은 '한국 담당자들이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서류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며 "한국 감독당국의 능력 부재는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에서는 '디스커버리 제도'라고 해서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료 문서를 다 제출하게 하고 기술자들부터 CEO까지 제조사 관계자들을 초기에 원고 변호사 사무실로 불러서 녹화하면서 심문할 수 있는 '디포지션 진술(재판 증인신문)' 제도도 갖춰져 있다"며 "한국에서는 소비자가 결함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소비자 중심의 제도가 한국에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국토부·환경부의 담당인력과 시설을 늘리고, 고객 불만을 법적으로 끌고 가며 '차 팔기 전에는 고객, 팔고난 다음에는 호갱'을 실천하는 수입차 업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