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지나 연출 "'나빌레라'는 무용이 중요...공연 미학 강조"
동명 웹툰 원작 뮤지컬 재연 합류5월14일 예당 CJ토월극장서 개막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서울예술단 가무극(뮤지컬) '나빌레라'의 이지나(57) 연출은 "컴퓨터 그래픽과 편집의 시대에 무대가 타 장르보다 뛰어난 건 상상력"이라고 강조했다. '나빌레라'는 지난 2016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 '나빌레라'(글 Hun·그림 지민)가 원작이다. 최근 같은 작품이 기반인 박인환·송강 주연의 동명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뮤지컬은 지난 2019년 진선규 주연으로 초연했다. 내달 14~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재연한다. 최인형·조형균이 '덕출' 역, 강상준·강인수가 '채록' 역을 맡는다. 이번 재연에 새로 합류한 이 연출은 "공연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 같은 상세한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여러 감정을 담는 건 드라마의 강점이죠. 공연은 무대만이 가능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감정선은 드라마의 박인환·나문희 선생님의 연기를 절대 이길 수 없죠. 대신 관객의 시야가 열려 있는 무대는 관객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줘요. 무용을 살리기 위해 드라마를 덜어냈어요. 현실과 타협할 땐, 적정선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신 관객분들이 행간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매번 다른 걸 읽을 수 있으니, 뮤지컬에 '회전문 관객'이 생기는 거죠."
작품은 치매 앓는 노인의 발레 도전기를 중심으로 가족, 신구 세대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연출은 흔히 말하는 낀 세대다. 늙은 부모를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고, 젊은 세대와 소통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실제 치매 증상이 있는 모친을 10년 넘게 부양하며 효녀로 이름 난 이 연출은 "'나빌레라'가 제 어머니 이야기이자 곧 다가올 제 미래의 모습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극 중에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장남인) '심성산'이 못나게 그려지는 측면도 있지만, 그 마음을 알 거 같아요. 부모 세대를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젊은 세대와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 저 역시 고민 중이거든요." '나빌레라'처럼 무용이 등장하는 뮤지컬에 이 연출만한 적임자도 없다. 국내 뮤지컬·연극 연출가 중 무용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무용극 '클럽 살로메',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힙합 뮤지컬 '인 더 하이츠' 등이 그녀의 손을 거쳤다.
이 연출은 집안 내력부터 무용을 비롯 예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대구 3남7녀 중 여덟번째 딸로 태어났는데, 이 연출의 모친은 무용을 조기교육시켰다. 40년 전 대구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배울 정도였다. 쌍둥이 언니 두 명은 발레 전공을 했다. 큰 오빠는 음악, 큰 언니는 미술을 공부했다. 이 연출은 연출 공부에 앞서 연기를 전공했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가족을 빗대 이 연출의 집안은 '대구의 폰 트랩 가족'으로 통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영국 미들섹스대학원에서 연출을 전공한 이 연출은 비교적 뒤늦게 연출가로 나섰다. 올해가 연출 데뷔 20주년이다. 2001년 '록키 호러 쇼'로 데뷔했다. '더데빌' '서편제' '광화문연가' 등 창작 뮤지컬, '헤드윅' '아가씨와 건달들' 등 라이선스 뮤지컬뿐 아니라 '버자이너 모놀로그' '거미여인의 키스' '지구를 지켜라' 등 연극까지 섭렵하며 국내 대표 연출가로 자리 잡았다. 조승우, 오만석, 엄기준, 송용진, 조정석 등 뮤지컬계를 주름잡는 스타 배우들이 그녀를 거쳤다. 이 연출은 연출가를 '야전 사령관'에 빗댔다. 현장과 조정실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출이라는 사람은 제작사와 관객 사이에서 '중립 기어'를 박고 있어야 해요. 제작자만 신경을 써도 안 되고, 관객만 신경을 써서도 안 됩니다. 구호 물자(제작비)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야 하고, 총알(대중의 평)과도 맞서야죠"라고 설명했다.
이 연출의 최근 수많은 작업은 '막판 스퍼트'에 가깝다. 그녀는 만 60세가 되면, '연출 은퇴'를 하겠다고 말해왔다. 재능 있는 후배들에게 더 많은 연출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오루피나 같은 이 연출의 제자들이 이미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참 힘들어요. 힘들게 일을 시작한 뒤에도 계속 고생을 하죠. 저희 세대가 할 일은 지갑을 열고, 철밥통을 걷어 차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최근 '어나더 컨트리' 예술감독으로 나선 건 신인 배우 발굴, 뮤지컬 '차미' 프로듀서로 나선 건 신인 창작진의 지원사격을 위한 목적이었다. 이 연출은 "신인 배우들을 위한 플랫폼, 신인 창작진들을 위한 울타리를 계속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흐르는 삶을 인정하는 것이 이 연출의 태도다. 그런 면모가 '나빌레라'에도 반영돼 '뭉클한 웃음'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평소 눈물이 많은 이 연출의 그간 작품엔 비장미가 많이 흘렀지만, 이번 '나빌레라'엔 코믹하거나 명랑한 장면이 많다. "죽음과 병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거잖아요. 엄살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긍정하며 받아들이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