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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이 기이한 카타르시스…'한산:용의 출현'

등록 2022-07-26 07:28:46   최종수정 2022-08-08 09: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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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한산:용의 출현'은 묘한 영화다. 이렇다 할 캐릭터 하나 없고, 스토리는 빈약하다못해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끝까지 보게 된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자세를 고쳐잡고 보게 된다. 그건 오직 이순신 덕분이다. 한국 사람은 어려서부터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반복해서 배운다. 이 구국의 영웅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우린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로 이해되는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를 이미 완벽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순신과 임진왜란 스토리도 꿰고 있다. 그래서 '한산:용의 출현'에는 캐릭터나 스토리 같은 건 없어도 된다. 이미 다 아는 걸 반복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왜군을 수장(水葬)하는 승리의 쾌감만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한산:용의 출현'은 이 한정된 역할을 꽤 성공적으로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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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러닝 타임을 절반으로 나눠 1부에선 조선과 왜의 첩보전을, 2부에선 첩보전을 끝낸 두 나라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맞붙는 해상 전투를 담는다. 1부는 조악한 편이다. 조선과 왜가 각각 상대 진영에 세작(細作)을 투입해 적군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게 주된 내용이지만, 이 정보전에 치밀함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관객이 이미 꿰고 있는 정보를 두 나라 스파이들이 목숨을 걸고 빼내와 결연한 표정으로 보고하는 장면들은 허무하기까지하다. 1부는 2부에서 펼쳐지는 해상 전투 장면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복무한다. 1부에서 에너지를 응축했다가 2부에서 폭발시키는 게 이 영화의 전략인데, 1부가 예상보다 더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다보니 해전의 폭발력이 더 커지는 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도 약 50분 간 펼쳐지는 한산도 해전 장면은 기술적으로나 이야기와 그 구성으로나 수준급 완성도를 보여준다.

'한산:용의 출현'의 주인공은 이순신이 아니라 한산도 해전이다. 김 감독의 '이순신 3부작'의 제목이 모두 전투가 벌어진 곳의 지명이라는 건 이 시리즈의 목표를 명확히 설명한다.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에 올인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마저 집어삼킨다. 배우 박해일이 정중동(靜中動) 하는 지략가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애초에 '한산:용의 출현' 시나리오는 배우가 활동할 수 있는 반경을 매우 좁게 설정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이 이 정도이다보니 눈에 띄는 다른 캐릭터도 없다. 왜군을 이끄는 '와키자카' 역의 배우 변요한 역시 혼신을 다해 연기하지만 박해일과 같은 이유로 인상적이기 어렵다. 김성규·김향기·김성균·손현주 등은 연기력이 뛰어나고 맡은 역할에 따라 색다른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지만, 도구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오용되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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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해상 전투 장면은 그 모든 단점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산:용의 출현'을 지탱한다. 그리고 지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어코 끝까지 밀어붙여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글자로만 보던 학익진이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장면은 시쳇말로 '가슴이 웅장해진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거북선이 마치 수호신처럼 등장하는 순간은 이 영화를 상영 시간 내내 심드렁하게 본 관객에게도 짜릿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순신 장군의 "발포하라" 네 마디가 극장 안에 울려퍼지면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될지도 모른다. 관객이 이 한·일 전에 푹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유례 없이 장시간 이어지는 해전을 완성한 기술력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규모 면에서 보면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맞붙여놓기 어려울 수 있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과다.

다만 '한산:용의 출현'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이 카타르시스에는 의문점이 있다. 이건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인가, 아니면 역사가 주는 카타르시스인가. 어떤 캐릭터도 만들 생각이 없어 보이고, 서사는 부실하게 쌓아올리는데도 영화적 쾌감이 이상하리만치 폭발적이라면 이 감정을 정말 영화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와 임진왜란이라는 이야기가 영화 안에 존재하지 않고 아웃소싱 된 게 '한산:용의 출현'이라면 이 작품을 과연 한 편의 온전한 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이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누군가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좋게 표현하겠지만, 또 어떤 관객은 철저히 기획된 한국형 콘텐츠라는 말로 폄하할 것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것이다. 한국 사람은 이순신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 그에 관한 이야기를 일단 듣고나면 국뽕에 빠지는 게 당연하다는 것.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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