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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원계홍' 잊힐 뻔했다...두 컬렉터가 없었다면

등록 2023-03-22 06:00:00   최종수정 2023-03-22 08: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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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

김태섭×윤영주 소장가 추진...100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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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역 1979 캔버스에 유채 45.5 × 53.2cm ⓒ원계홍기념사업회, 사진 박성훈 성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숨어도 저절로 알려진다.

성곡미술관에서 선보인 '그 너머_원계홍(元桂泓, 1923-1980)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뜻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 공간화랑에서 열린 유작전 이후 33년 만에 빛을 본 전시로  미술애호가들의 역할을 새삼 각인 시킨다.

이번 전시에 나온 100여 점은 두 소장가, 김태섭 전 장신대 학장과 윤영주 우드앤브릭 회장 덕분이다.

"'작품은 팔지 말고 잘 갖고 있는 게 좋겠다'는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말씀으로 견뎠죠.”

김태섭 전 학장은 1989년 부동산 주인 소개로 간 원 화백 부암동 집에서 그림과 만났다. 들어본 적 없는 화가였지만 작품에 눈이 멀었고, 당시 아파트 두 채 가격에 작품 200점을 인수했다. 지금도 원계홍 작가의 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작품을 보관할 곳이 없어 방 두 칸에 그림방을 만들었다.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앞 집에 세를 얻어 공부방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윤영주 회장은 1984년 크라운제과 대표 시절 처음 30년 전 인사동에서 열린 유작전에서 처음 본 그림에 빠져들었다. 이후 장안평 고미술상가에서 엘피판처럼 쌓여 있는 그림을 발견했는데 슬픈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원계홍은 생면부지 두 사람을 연결시켰다. 10년 전 쯤 윤영주 회장이 '원계홍 흔'적을 찾다가 김 전 학장의 글을 발견했고 댓글을 달면서 이어졌다. 100주년 전시를 열자고 흔쾌히 추진한 이번 전시에는 김태섭 씨가 소장한 65점, 윤영주 회장이 소장한 16점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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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계홍, 장충동 1가 뒷골목, 1980년, 캔버스에 유채, 65×80.6cm, ⓒ원계홍기념사업회, 사진 주명덕 성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성곡미술관 이수균 학예실장에 따르면 원계홍은 '외골수 화가'로 불린다. 1940년대에 도쿄로 건너가 주오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이노쿠마 겐이치로(Inokuma Genichiro)의 사설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등 경제학보다도 그림을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계홍은 귀국한 후에도 아틀리에에서 서구 거장들의 미술 이론을 독학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몰두했다. 주로 정물과 주변 풍경, 서울의 골목길 등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으며, 간간이 인물화와 추상화, 은지화도 제작했다. 그중 원계홍이 1970년대 후반부터 작업한 골목 풍경화들은 개발 전 서울의 모습을 포착한 그림들로, 대담한 구도와 단순명쾌한 필치가 두드러지고 현대인의 우수가 느껴지는 대표작이다. 

좀처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1978년 55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두 번째 개인전, 제3회 '중앙미술대전' 초대 전시를 통해 화단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듯했으나, 1980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른 죽음으로 인해 그의 족적은 세상에서 잊혀 사라질 뻔했다. "먼지처럼 흩어질 뻔한 운명을" 잡아준 두 소장가, 김태섭씨와 윤영주씨가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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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계홍, 장미, 1977년, 캔버스에 유채, 34.5x26.5cm, ⓒ원계홍기념사업회, 사진 주명덕 성곡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에게 그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략) 이 화가는 늘 인간에게 절망하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걸면서 아름답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았었다. 그의 그림은 정신이 병들지 않고 기술이 숙련에 때묻지 않고 소박하며 원시적인 건강함에 빛나고 있었다.” (故 이경성, 「원계홍, 그 우수의 미학」(1984) 中)

전시는 원계홍의 작품 100여 점과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인다. 원계홍의 ‘순수한’ 예술혼과, 그의 예술을 지켜낸 소장가들의 ‘순수한’ 애정을 기억하는 의미를 담았다. 故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오광수 미술평론가, 김현숙 박사의 글로 한국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원계홍의 작품 세계를 재평가한다. 생전 '그림만 보고 살았다'는 화가의 맑은 기쁨이 전해진다. 5월2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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