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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5월' 5·18 진실 밝히는 잇단 증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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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5-01 14:10:51  |  수정 2017-05-08 1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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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전남대학교병원은 1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병원 의료인들의 증언모음집 '5·18 10일간의 야전병원'을 발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5·18 당시 밤낮없이 진행된 초응급 진료 모습. 2017.05.01. (사진=전남대병원·나경택씨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다시 돌아온 5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등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왜곡에 맞서 신군부의 잔혹한 만행과 5·18의 진실을 알리는 새로운 증언과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전남대학교병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병원 의료인들의 증언모음집인 '5·18 10일 간의 야전병원'을 1일 공개했다.

 고 조영국 당시 전남대병원장, 노성만 전 전남대총장, 김신곤 전 전남대병원장 등 의사와 간호사 총 28명의 증언이 220여쪽에 실렸다.

 "1980년 5월 전남대병원도 계엄군의 진압 대상이었다"는 이들의 증언은 5·18 당시 계엄군의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의료진의 증언에 따르면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있었던 27일 새벽, 계엄군은 병원을 향해 사격을 가했고 총을 들고 병원에 들어와 병실마다 위협적인 수색을 펼쳤다.

 5·18 당시 전남대병원에 대한 집중 사격은 계엄군이 광주서 퇴각하던 21일 단 한 차례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증언을 통해 27일 한 차례 더 발생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또한 전쟁 중에도 적의 의료시설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게 국제적 관례다. 계엄군과 신군부가 이마저도 무시하고 비인도주의적으로, 광주 시민들을 과잉 진압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당시 마취과 레지던트였던 유경연 전남대의과대학 명예교수는 27일 상황에 대해 "이날 계엄군이 병원 담 쪽을 에워싸더니 일제히 총격을 가했다. 이후 안으로 들어와 병실을 검문했다"며 "날이 밝아 확인한 결과 임시숙소로 사용했던 11층 병실의 유리창 대부분은 총격에 깨졌다"고 회고했다.

 이어 "병원 옥상에는 시민군이 설치한 기관총이 있었다. 계엄군이 그곳을 향해 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11층을 향한 것으로 느꼈다"고 덧붙였다.

 외과 조교수였던 김신곤 명예교수는 "계엄군이 진압을 위해 새벽에 들이닥칠 때 11층 병실에서 자고 있던 우리들에게도 총구를 들이댄 기억이 있다"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5·18 10일 간의 야전병원'에는 계엄군이 광주를 퇴각하면서 전남대병원에 첫 번째 집중사격을 가한 21일 상황도 비교적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 정형외과 교수였던 노성만 전남대의과대 명예교수는 "계엄군은 당시 정형외과가 있는 건물을 향해 총을 수평으로 들고 쐈다. 불이 켜져 있는 2층을 보고 사격했으며, 총소리에 누구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고 기억했다.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노성만 교수의 캐비닛과 가운은 현재 전남대 5·18연구소와 전남대 의학박물관에 각각 전시돼 있다.

 당시 전남대병원의 진료기록부·수술대장·마취장부에 따르면 이들 전남대병원 의료진이 5·18 기간 치료한 사상자는 모두 223명이다.

 이중 총상 환자는 41%를 차지했다. 10명 중 4명의 광주 시민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구타 58명(26%), 교통사고 24명(10.8%), 기타(최루탄·폭약·낙상·자상 등) 50명(22.4%)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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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지난 1995년 서울지검장 재직 시절 5·18 특별수사 본부장을 맡아 12·12 및 5·18 재판으로 전직 국가원수 부정비리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최환 변호사가 1일 오전 광주시청 중회의실에서 공직자 상대 특강을 갖고 있다.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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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집단발포가 시작된 21일 사상자가 40%로 가장 많았다.

 연령대별로는 20대(20~29세)가 47%(105명)로 가장 많았으며, 초·중·고생 연령층인 10대(22%·49명)가 두 번째로 많았다. 10세 미만도 6명이나 됐다. 계엄군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전남대병원 측은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거나 치료만 받고 바로 퇴원한 경우를 감안하면 실제 사상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발포명령자와 헬기사격 여부 등 1980년 오월의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 바로잡기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진들의 증언이 공개된 이날 5·18 특별수사 본부장을 맡았떤 최환 변호사가 광주를 찾아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강하게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지난 1995년 서울지검장 재직 시절 5·18 특별수사 본부장을 맡아 12·12 및 5·18 재판으로 전직 국가원수 부정비리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전두환 회고록의 발포명령 부인은 통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일침을 가했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신을 5·18의 희생자로 표현했으며 "발포 명령이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5·18에 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전두환은 '폭도들이 몰려와 총괄해서 포괄적으로 명령을 내렸다'고 인정했었다"며 "이는 발포와 총기 사용을 전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생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발포 명령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게 전두환의 입장"이라며 "회고록으로 민주화 운동을 왜곡·폄훼해서 뒤집어놓으려는 행동 자체가 더 큰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인사들이 폭도가 되거나 진실이 뒤집어지는 일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5·18 단체들은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또는 성직자가 아니다"고 회고록에서 표현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5·18단체는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광주전남지부와 협의해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출판물 판매 및 배포 금지 가처분을 조만간 법원에 신청할 예정이다.

 gugg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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