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영리한 풍자, 정교한 웃음…'겟 아웃'
크리스(대니얼 칼루야)는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엄스)의 고향에 가 얼마간 머물기로 한다. 걱정이 있다면, 자신이 흑인이라는 걸 백인인 로즈의 부모가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로즈는 자신의 아버지가 오바마의 열성 지지자라며 인종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로즈의 집에 도착한 크리스는 두 명의 흑인이 저택 관리를 맡고 있는 게 조금 신경쓰이지만, 여자친구 부모의 환대에 안심한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크리스는 로즈 집의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공포영화 '겟 아웃'은 귀신이나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무관하다. 필레 감독은 인종주의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도 공포와 긴장을 충분히 만들어낸다("너희 부모님이 내가 흑인이라는 걸 알아?"라는 크리스의 첫 대사가 영화의 방향을 알려준다). 영화는 물리적 위협 못지 않게 무서운 게 사회에 뿌리내린 편견이라는 심리적 위협임을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겟 아웃'이 흥미로운 건 특정 피부색을 향한 비하, 이를 테면 1차원적 형태의 인종차별을 소재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는 전혀 노골적이지 않지만 은연 중에 그러나 명백히 자리잡은 흑인에 대한 '타자화'를 지속적으로 짚어냄으로써 묘한 공포감을 형성한다.
'겟 아웃'은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극을 열자마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만 온 힘을 쏟는 흔한 공포물과 달리 이 작품은 러닝타임 중 80분을 써 공포와 긴장의 끈을 최대한 잡아당겼다가 마지막 20분을 남기고 놓아버린다. 강력한 훅을 노리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잽을 날려 상대의 발을 묶은 뒤 결정적 한 방을 날리는 형식이다. 유일하게 관객을 의도적으로 놀라게 하는 듯한 장면이 초·중반부에 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면 이 시퀀스 또한 후반부 결정적인 극 전환을 위해 정교하게 뻗은 잽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된다.
'겟 아웃'의 제작비는 450만 달러, 약 50억원 정도이다.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독립영화 중에서도 작은 예산 규모에 속한다. 이 작품이 벌어들인 돈은 2억1400만 달러가 넘는다. 한화로는 2400억원에 육박하는 액수다. 히어로 영화 한 편을 만들고도 남는 돈이다. 영화를 돈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겟 아웃'은 그정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