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첨]유전자 가위, 약인가 독인가
【서울=뉴시스】류난영 기자 = 우리나라는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 4대 보유국이다. 하지만 이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연구는 미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지고도 '생명윤리법' 등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임상연구 전단계인 비임상연구(동물실험)만 겨우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적정선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일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마켓 앤 마켓에 따르면 전세계 유전자 가위기술 시장 규모는 2014년 18억4500만달러(약 2조710억원)에서 2019년 35억1400만달러로 연평균 13.75%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조사결과 2018년에는 해당 기술을 이용해 감염성 질환에 대해 최초 유전자 가위기술 기반 치료제의 FDA 승인이, 2023년까지는 감염성 질환 뿐 아니라 암 등의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로의 실용화가 가시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전자 가위기술은 기존의 의학적 방법으로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질환 등에 대해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기술은 유전질환 뿐 아니라 암, 감염증, 대사이상 질환, 자가면역 질환 등의 치료에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유전자 가위기술은 2017년 바이오 미래유망기술 중 6번째로 선정됐다. 유전자 가위기술은 DNA 염기서열의 특정부위를 인식하고 자르는 방식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로 나뉜다. 미국 임상연구 임상등록사이트 '클리니컬 트라이얼스'에 등록된 유전자 가위 치료제 임상은 총 17건이었다. 이 가운데 전체의 53%인 9건이 미국이었고, 중국 5건(29%), 영국 3건(18%)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 한건의 임상도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또 국내외 논문검색 엔진인 팝메드에 따르면 유전자가위 활용 비임상연구는 84건이었다. 이 가운데 미국이 전체의 절반 이상인 44건(52%)로 가장 많았고 중국이 17건(20%)로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3위로 5건에 불과했다. 임상·비임상을 포함해 총 53건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10분의 1 수준도 안되는 초라한 성적표다. 중국과 비교해 봐도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초라한 성적표에도 국내 유전자가위 기술 수준은 높은 편이다. 국내 기업가운데 유전자 가위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툴젠, 엠젠플러스 등 벤처기업이 선두를 자리하고 있다. 특히 툴젠은 제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관련 원천기술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툴젠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특허는 미국, 유럽을 비롯한 9개국에서 등록 및 심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지난해 한국 특허가 등록되고 호주 특허가 승인된 바 있다.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아직 치료제 분야의 구체적인 시장은 형성되지 않았다.기술력은 있는데 유전자기술을 활용한 치료제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것은 생명윤리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유전자 치료는 암, 유전 질환,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이면서 동시에 유전자 치료 외에 마땅히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위한 연구에만 적용 가능하고, 인간 배아와 태아를 대상으로 치료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영국, 중국 등은 잇따라 기초연구를 목적으로 한 인간 배아 연구를 허락하고 있다. 영국 인간생식배아관리국은 지난해 초 유전자 교정을 거친 배아는 14일 내 폐기하고 자궁 착상을 금지하는 조건을 달아 유전자 가위기술을 이용해 인간배아의 유전체를 연구용으로 교정하는 것을 허가했다. 중국도 지난해 쓰촨대 교수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첫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미국 역시 지난해 6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미국 펜실베니아대 연구팀이 신청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가위 임상시험을 승인했다. 업계에서는 윤리·안전성 문제 등을 고려해 어느정도의 규제는 필요하지만 과도할 경우 외국과의 기술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는 만큼 적정선에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전자 가위기술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없는 희귀 유전질환 등 치료 효율이 낮은 난치 질환에 대해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유전자 가위기술에 대한 국내·외 특허권을 확보한 기업들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유전자 치료제가 필요하지만 아직 안전성이 확보도지 않았고, 인간배아를 연구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1999년 유전장애를 앓고 있던 미국의 18세 소년이 펜실베니아 대학의 유전자 치료에 참여 했다가 유전자 편집 중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사망한 바 있다. 또 유전자 치료를 받던 아이들이 잇따라 백혈병에 걸리자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2003년 유전자 치료를 잠정 중단한 바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은정 연구원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은 인류의 질병을 쉽고 빠르게 치료해 주기도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절단할 수 있는 위험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며 "자칫 절단된 유전자가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유전자일 경우 오히려 없던 질병을 발생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