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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6·25 때부터 3대째 어린이 양육···비전아동센터 박진숙 목사

등록 2017-06-25 10:55:41   최종수정 2017-07-04 09: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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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박진숙 비전교실 지역아동센터장이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비전교실 지역아동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어릴 적 전쟁 고아들과 함께 먹고 공부하며 자라"
"할아버지부터 시작된 양육, 아버지 거쳐 저까지"
"좋은 일한다 소리 싫어···아이들 돌봄, 꼭 해야할 일"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1952년 할아버지가 6·25전쟁으로 급격히 늘어난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전북 순창에 '순창 애육(愛毓)원'을 세우셨어요.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이어 운영하셨고, 덕분에 저희 남매는 전쟁 고아들과 함께 자랐죠."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상가 3층. 마치 학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은 박진숙(56·여) 목사가 운영하는 비전교실지역아동센터다.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장애인·다문화 가정 등 지역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학습 등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돌봄 역할을 한다.

 박 목사가 할아버지 때부터 3대에 걸쳐 어린이 양육 활동을 하는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애육원 설립자 고(故) 박삼수 순창읍교회 장로는 처음에는 교회에서 고아들을 돌봤다. 하지만 교회가 전쟁 고아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지자 자기 집과 땅을 내놓고 고아원을 설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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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순창 애육원 단체 사진. 보급품으로 보이는 옷가지들이 앞에 쌓여 있다. (사진 = 한국컴패션 제공) 2017.06.25.
[email protected]
이후 박 목사의 아버지 고(故) 박석은 전 순창애육원 원장이 동생과 함께 애육원을 운영했다. 이들은 오이와 고추 농사를 지으며 가족과 전쟁 고아 등 100여명의 생계를 꾸려갔다.

 "당시에는 미군 구호물품이 배급됐어요. 애육원 언니, 오빠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고 자랐죠. 학교에서 배식하는 빵도 같이 받아 먹고 그랬어요. 애육원 마당에서 돌멩이로 공기놀이하고 냇가에서 물놀이도 하며 함께 살았죠."

 박 목사의 어린 시절 기억은 애육원에서의 생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박 목사의 아버지가 6남매 자식들을 전쟁 고아들과 함께 키웠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학교를 마치면 애육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언니, 오빠들과 함께 놀고 공부와 숙제도 한 뒤 늦은 시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박 목사는 "언니, 오빠들이랑 함께 지내는 건 좋았지만 그땐 아버지한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며 "좋은 물건, 새 물건은 애육원에 들였고 정작 우리 집에서는 애육원에서 쓰다 고장난 물건들을 수리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 목사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애육원에서 보모 일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사회복지사 역할인 셈이다. 당시에는 여성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진학보다는 돈을 벌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박 목사는 설명했다.

 아버지를 도와 4년 간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매진한 박 목사는 대학 진학을 결심한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 사회복지학, 목회상담학 등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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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비전교실 지역아동센터에서 박진숙(왼쪽 다섯번째) 센터장이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email protected]
박 목사가 비전교실지역아동센터장 역할을 한 것은 2009년부터였다. 그는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때부터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 20~40명을 돌보는 센터를 운영 중이다.
 
 학교를 마친 뒤 이곳을 방문하는 아이들은 영어, 수학 등을 배우고 학교 숙제도 한다. 끼니 때면 센터 조리사가 정성껏 만든 식사도 함께 한다.

 한 초등학생은 이곳에서 갈고 닦은 영어 실력으로 최근 영어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으며 몇몇 고등학생은 서울 시내 내로라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박 목사는 아이들에게 나눔의 가치를 가르치고자 아이들과 함께 직접 선택한 아프리카 케냐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을 통해 2014년 3월부터 시작한 정기 후원활동이 어느덧 3년 째를 맞았다.

 박 목사가 벌이는 활동이 매번 쉽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국가의 보조금 지원 부족, 제도의 미비 등으로 여러 시기 고비를 넘겨왔다는 것이 박 목사의 설명이다.

 박 목사는 "센터 사정이 어려워 문을 닫으려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마음이 무겁더라"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엄마 같은 마음이 생겼다. 내가 센터 문을 닫으면 아이들을 버리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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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박진숙 비전교실 지역아동센터장이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비전교실 지역아동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그는 "그만두려 할 때마다 그럴 수 없었다. 금전적 어려움이 생겼을 때, 사재를 털어도 모자랄 때, 신기하게도 후원금이 센터 통장에 입금돼 있었다. 정말 딱 필요한 만큼의 돈이었다"며 "그렇게 또 아이들을 위한 책을 구입하고, 선생님을 초빙하고 더 좋은 환경을 위한 부동산 임대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 목사는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남매들 역시 전국 곳곳에서 경로원과 요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박 목사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좋은 일 한다는 얘기는 정말 듣기 싫어요. 좋은 일 아니고 반드시 해야할 일인 거죠. 어떤 사람들은 왜 당신이 고생하냐고 하는데 저는 현장에서 제일 필요한 일을 하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고 재밌어요. 힘들지만 지금처럼 계속 돌봄사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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