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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스크리닝]박열이 의열단 만든 사람 아니었네

등록 2017-07-12 06:50:00   최종수정 2017-07-12 06: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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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박열'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18세 나이로 일본 도쿄로 건너가 흑도회, 흑우회 등 항일 사상단체를 이끌어 온 선생은 1923년 9월 일본 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와중에 일본 국왕을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른바 ‘대역 사건’이다.
 
이로 인해 선생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5년 10월 27일 아키다(秋田) 감옥에서 석방될 때까지 무려 22년2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중)

얼마 전까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선생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했다. 그러나 이제 최소한 193만 명은 선생의 이름을 떠올린다. 선생은 독립운동가 박열(1920~1974)이다.
 
박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말에 ‘'의열단을 만든 사람인가'라고 생각(틀렸다. 의열단을 만든 사람은 김원봉 선생이다.)하기도 한다.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그다.
 
그도 그럴 것이 박열의 독립운동은 안중근·윤봉길·이봉창 의사나 김좌진 장군처럼 다이내믹하지도, 김구 선생처럼 파란만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박열의 활동은 1920년대 초·중반 '대역 사건'으로 잠깐 반짝했을 뿐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기 어려웠다.
 
실제 그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서 일본 현지에서 사상을 기반으로 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누명을 쓴 뒤 장기간 옥고를 치러 사람들의 뇌리에서 곧 잊혀졌다. 해방 후에도 한동안 일본에 머물며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의 초대단장을 맡아 재일 한국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국내에서는 그를 여전히 잊은 상태였다.
 
마침내 1949년 귀국했으나 이번에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고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 뒤 아예 소식이 끊기다시피 한 인물이라 더욱 그랬다.

그랬던 그가 이준익 감독과 '박열'을 열연한 주연 배우 이제훈, 그리고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투자 배급사 메가박스 플러스엠에 의해 역사책 뒷편에서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무고한 조선인 6000여 명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 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이제훈)은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사형까지 무릅쓴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하는데...."

 영화는 박열이 일본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당시 어떤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가 왜 22년 넘게 옥살이를 해야 했는지 등을 담담하게 그려간다.
"조선인 최초의 대역죄인!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 왜 그였고,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상 초유의 스캔들!"을 그가 왜 일으켰는지, 그는 어째서 스스로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대역죄인이 돼서라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 사건이 지속해서 주목받고 회자하기를 바랐다.

사실 이런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무척 심심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암살'(감독 최동훈)이나 송강호, 공유 주연의 '밀정'(감독 김지운) 등 지금까지 히트한 독립운동 소재 영화처럼 역동적이거나 신파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아니 이 감독처럼 믿고 보는 감독이 만들고 이제훈처럼 핫한 배우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박열은 여전히 역사책의 저 뒤편에서 옥살이보다 더 오래고 힘든 '책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라는 대중 예술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크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동시에 아직 책살이 중인 수많은 애국지사가 대중 예술의 힘을 빌어 후손 앞에 제대로 조명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박열'이 더 잘 돼야 한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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