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힌츠페터에겐 목격자의 아픔 있었어요"
■故 위르겐 힌츠페터 부인 에델트라우트브람슈테트 여사 영화 '택시운전사' 독일기자 실제 주인공···5·18 묘역에 안치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5·18민주화운동기념일에 남편과 함께 광주에 가 헌화한 적 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감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어요. 전 물론 당시를 경험하지 않았습니다만 남편의 표정에서 그 슬픔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목격자였으니까, 광주에 오면 여러가지 기억이 되살아났겠죠. 그런 남편이 참 안타까웠어요."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가던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80)는 광주에 왔던 기억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는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의 아내다.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세계에 알려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독일 기자로 이른바 '푸른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배우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독일 기자가 바로 힌츠페터다.
브람슈테트는 한국에서 남편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8일 입국했다. 다음 날 함께온 여동생과 '택시운전사'를 본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는 것과 영화를 보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배우들의 감정이 표정을 통해 다 드러나니까, 그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그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역시 영화 끝부분에 등장하는 남편의 실제 인터뷰 영상을 꼽았다.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게 이유였다. "가슴 아픈 역사를 목격한 증인으로서의 아픔이겠죠. 그게 되살아나는 장면이었어요. 남편의 얼굴에서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 보이더군요. 저 또한 복받칠 수밖에 없었어요." 힌츠페터는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들어갔던 택시기사에 관한 작품이다. 말하자면, 기자와 택시기사가 한 팀이 돼 그때의 진실을 담은 뒤 다시 광주를 탈출하는 이야기다. 힌츠페터가 목숨을 걸고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03년 11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생전 "내가 죽으면 광주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 뜻에 따라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이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안치됐다. "제가 남편을 만난 건 2002년입니다. 그는 저를 만난지 얼마 안돼서 광주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정말 리얼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아마 그건 남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는 누구를 만나도 광주에 관해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는 힌츠페터가 했던 말 중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마음 깊게 남아있다고 했다. 브람슈테트는 "젊은 친구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고 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젊은이들이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잊겠나"라고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왜곡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게 폭동이었다면, 왜 젊은이들이 그렇게 죽었겠어요. 제 남편은 왜 목숨을 걸고 그들과 그때를 촬영했을까요. 그들에게 진실이 있었고, 그 진실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일 겁니다. 남편이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던 건 그때 그 젊은이들과 죽어서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겠죠." 영화 속에서 힌츠페터와 택시 기사 김사복(송강호)은 광주에서 빠져나온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실제로도 그랬다. 힌츠페터는 생전 김사복을 애타게 찾았지만, 결국 그와 재회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그분을 '아주 낙천적인 친구녀석'이라고 표현하곤 했어요. 그 또한 자신과 같은 사명감이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택시 기사로서 남편을 광주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동지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도왔다면서요. 남편은 김사복 또한 민주주의에 대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항상 다시 만나고 싶어했어요." 브람슈테트는 "남편이 살아있었다면 이 영화를 매우 좋아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 세대들도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해요. 글로 읽는 것과 영상을 보는 건 다르잖아요. 이 영화가 교육적인 면에서 광주에서의 역사를 세대를 이어 잊지 않게 할 겁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