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호철 문학상 초대 수상 재일동포 김석범 작가 "못올 줄 알았는데 이번 한국행 기념비적"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DMZ 내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시상식에서 첫번째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92) 작가는 기자와 만나 14번째 한국행의 의미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과 북한 어느쪽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채 무국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남과 북 양쪽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아 남과 북 어느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다. 2년만에 모국을 찾게된 김 작가는 분단문학의 거장인 소설가 이호철 선생의 유업을 기리는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을 더할 나위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수상 자체도 화제이지만 그의 발언이 가진 정치적 무게감도 관심을 모았다. 제주4.3사건을 그린 소설 '화산도'로 널리 알려진 그는 줄곧 한국의 독재정부를 비판하는 집필활동을 해왔다. 지난 2015년 4.3 평화상 1회 수상자로 선정돼 13번째로 제주도를 찾았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을 포함한 친일파 청산에 대한 날선 비판을 했다가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고, 한국행을 주저했다.
90세를 훌쩍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김 작가는 작품생활 내내 정치와 문학을 동일시하는 인물이다. 김 작가는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면 입국하기 곤란했을 것"이라며 "이번이 14번째인데 이전에는 올때마다 마지막 한국행, 고국행이라고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17세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척화파 김상헌의 시조에 비유했다. 김 작가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냐마는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라고 하는데 한국 올 때마다 올동말동 한다"며 "제작년 왔을 때 일본 돌아가서 한국행 에세이를 하나 썼다. 200자 원고지로 160장인데 '마지막 한국행'이라고 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4.3평화상 수상 소감에서 해방공간에 대한 얘길 내 나름대로의 역사의식에 따라 말했다. 이승만 정부가 정통성이 없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것을 갖고 지나치게 공격받았다"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국)우익들이 똘똘뭉쳐서 데모도 했다. 화가 나는 것은 그게 일본 신문에 '한국이 이렇다'고 다 나와 창피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90이 넘은 나이에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첫째 수상자가 된 것은 고마운 일"이라면서 "서울, 한국의 공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오염됐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때)천만, 오천만이 모여 데모하면서 그 바람에 더러운 공기가 휘날려 간 것 같다. 이제 시원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어제 들어왔는지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몸이 좀 괴로웠지만 오늘은 몇 시간 자니 좀 힘이 난다. 이번 한국행은 나로서는 기념비적"이라며 "이제는 민주정권이다, 국민이 만든 정부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때도 이런 게 없었다. 새로운 사회의 출발"이라고 기뻐했다. 김 작가는 복원된 민주정부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시 한 번 모국을 찾을 것이다. 말이 불편해서 자유롭진 못하지만 또 오겠다. 박근혜가 있었으면 못왔을 것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젊은이들이 힘을 내줬다. 다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젊은이들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호철 선생의 작품에 담겨있는 것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역사'라면서 자신도 계속해서 올바른 역사의식으로 글을 쓸 것이며 젊은이들도 역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작가는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당장은 모국 방문기를 써야겠지만 장차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세상을 쓰고 싶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100세를 눈앞에 둔 그에게 조국의 민주정권 수립은 또다른 창작욕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김 작가는 '이제는 대한민국이나 북한중 국적을 가질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나는 조선인"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조선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전의 통일된 나라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