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선박사고 반복 왜···해양 안전 '빨간불'
세월호 참사 이후 법·제도 강화해도 '과적·부주의' 관행 여전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최근 해양 선박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고질적인 선박 '안전불감증'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경북 포항 구룡포 앞바다에서 어선이 전복돼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하루 뒤에는 포항구항에서 두 척이 충돌하는 사고로 3명이 사망했다. 특히 지난 2013년 이후 4년간 선박사고 2.7배, 사망·실종자는 50% 급증하면서 사전 예방 교육 등 철저한 안전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과적·부주의·정비 불량 '관행'···해양 선박사고 부추겨 경북 포항에서 연이틀 선박사고가 발생해 6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4시30분께 경북 포항 구룡포 북동쪽으로 37㎞ 떨어진 지점에서 통발 어선 제803 광제호(27t급)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어선에 타고 있던 선원 9명 가운데 선장 김모(58)씨 등 3명이 구조됐고, 4명이 사망했다. 나머지 2명은 실종됐다. 이번 전복사고는 기상 상황이 좋은 않은 상태에서 붉은 대게를 잡으러 출항했다 참변을 당했다. 출항 1시간30분 만에 높은 파도에 배가 뒤집혔다. 당시 선장을 비롯한 기관장, 갑판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6명의 선원은 선실에서 자고 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배는 별다른 구조요청도 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 사고 발생 8시간 만에 인근을 지나는 유조선이 발견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에 의해 선장 등 3명은 구조됐지만, 6명 선원 가운데 4명이 숨졌다. 현재까지 실종자 2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선 전복사고의 원인이 '과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사고 당시 배 무게보다 더 많은 짐이 실려 있던 것을 드러났다. 배 무게가 27t이지만, 그물이나 어구 등 약 29t의 어업을 위한 짐이 실려 있었다는 게 해경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과적으로 배가 복원력을 잃고 높은 파도에 그대로 뒤집혔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해경은 이와 함께 사고 직후에 긴급 구조요청이 없었다는 점에서 어선위치발신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여부 등도 조사 중이다. 사고 당시 광제호에는 V-PASS(자동위치발신장치)와 VHF-DSC(초단파대 무선전화설비)․AIS(선박확인시스템) 3가지 어선위치발신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V-PASS는 선박 출입항 신고와 긴급신호를 위해 사용된다. 광제호는 출항 당시 포항어업통제국에 수기로 신고했다. 이에 V-Pass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거나 선장이 긴박한 상황에서 비상벨만 누리고, V-Pass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경은 선장 등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등을 조사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긴박한 상황에서 선장이 구조 버튼을 제때 누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추후 조사를 진행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신병처리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광제호가 전복된 불과 하루 뒤인 지난달 31일 오전 4시24분께 포항구항에서 출항하던 어선 태성호가 입항하던 배와 출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치망 어선인 태성호가 예인줄을 이용해 종선인 태성13호를 끌고 가던 중 예인선 금광9호가 예인하던 바지선 금광10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목선인 태성 13호가 침몰해 선원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사고 직훈 태성호 선장은 V-Pass가 작동하지 않자 휴대전화를 해경에 신고했다. 실종자 1명은 이날 오전 8시 포항구항 쌍용부두에서 약 120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하루 간격으로 일어난 두 사고 모두 안전불감증이 낳은 사실상 인재(人災)나 다름 없다. ◇해양 선박사고 최근 4년 2.7배 급증···기관손상 가장 많아 해양 선박사고가 최근 4년간 2.7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이만희 의원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해양선박사고 현황'을 보면, 지난 2013년 1052건에서 2014년 1418건, 2015년 2740건, 2016년 2839건으로 최근 4년간 2.7배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사망·실종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3년 67명에서 2016년 98명으로 최근 4년간 46.3% 증가했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2014년도의 경우 사망·실종자가 485명으로 전년 대비 7.2배나 급증했다. 지난해 해양 선박사고는 총 2839건으로 집계됐다. 원인으로 '기관손상'이 759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선박 충돌(311건) ▲추진기 손상(282건) ▲침수(204건) 등이 뒤를 이었다. 또 사고 원인별로는 ▲정비 불량(1208건) ▲운항 부주의(915건) ▲기상악화(204건) ▲관리소홀(174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세월호 사건 이후 선박사고 예방이 더욱 중요함에도 안전 불감증 등으로 선박사고가 증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는 조업 안전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하고, 노후선박을 현대화하는 등 선박사고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 선박사고 예방과 안전을 위한 법과 제도가 강화됐다. 지난 2015년 7월7일 여객선 운항관리업무가 해운사 이익단체인 한국해운조합으로부터 공공기관이 선박안전기술공단(KST)으로 이전됐다. 운항관리자가 종전 74명에서 106명으로 늘었고, 전국 연안여객선의 입출항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여객선 운항관리시스템 ‘KST-POS’도 구축했다. 현재 전국 11개 운항관리센터에서 101개 항로 168척의 여객선 운항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여객운송사업자가 해양 사고를 낼 경우 다시는 면허를 발급받지 못하고, 사고 후 구조 조치 등을 소홀히 한 선장과 승문원의 경우 가중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 규정 위반 사업장에게 부과되는 과징금을 최대 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인상했다. 또 선박의 과적을 막기 위해 선박 선적 화물차량은 화물적재량을 증명하는 계량증명서를 제출받고, 화물차를 선박에 선적하도록 해운법이 개정됐다. 이 밖에 선박의 블랙박스인 항해기록장치(VDR) 설치 의무를 확대하고, 내년부터 노후선박을 친환경선박으로 교체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해양 선박사고를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안전 불감증이 여전하다. 선박사고는 인명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지만 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할 장치는 뒷전에 밀려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장은 "한 번 출항할 때마다 기름 값과 인건비 등을 생각하면 욕심이 안 낼 수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과적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것저것 다 지키다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선장은 "V-Pass의 경우 잔 고장이 많고, 번거롭고 귀찮아서 고장이나 분실 신고를 하고 방치해 두는 경우가 많다"며 "안전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나하나 쯤이야'라는 생각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사고발생 시 어선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어선위치발신장치를 갖추지 않고 항해나 조업을 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장치가 작동하지 않거나 고장·분실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고장·분실 신고만 하면 과태료 대상에서 제외돼 일부 어선들이 신고만 한 채 고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리나 재부착을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방치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양 선박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과 해양종사자들의 안전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배천직 박사는 "해양 선박사고는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 높다"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박사는 이어 "어선위치발신장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법과 제도의 부족한 점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해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며 "사고예방을 위해 정부나 당국의 역할도 있지만, 해양종사자들 역시 안전 장치가 불편하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