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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정의 寫讌]몽골유학생 '나랑게렐'의 미소…'세상 야박하지 않아'

등록 2017-12-19 06:00:00   최종수정 2017-12-19 09: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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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다 타버린 몽골인 화재피해가정에서 봉사자들이 전기 배선 등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쿵쾅 쿵쾅 우당탕탕” 큰 소리가 나는 집 안에서 양손에 공구를 든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열린 문으로 탄내가 훅 풍긴다. 온통 새카맣게 불에 타버린 반지하 셋방, 봉사자들이 분주한 모습이다. 벽에 붙은 모든 것들을 다 뜯어내고 전선을 새로 연결하고 있다. 한 봉사자가 타고 그을린 벽을 긁어내며 이야기 한다.

“발화점이 여기인가. 심하게 타고 다 녹아버렸어요. 큰일 날 뻔 했어.”

화마는 삽시간에 세 가족의 보금자리를 앗아갔다. 다행히 방안에서 갓 돌이 넘은 손자를 재우고 있던 할머니가 등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인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급히 대피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학생인 아기 엄마 나랑게렐(23)은 화재당시 외출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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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다 타버린 몽골인 화재피해가정에서 봉사자들이 전기 배선 등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몽골인인 나랑게렐은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대학교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과학자가 꿈인 생명과학 전공 대학생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동대학교 어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나랑게렐은 임신 중 많이 아팠다. 출산 전 아이 아빠와 헤어졌고 몽골에 계신 어머니가 아픈 딸을 돌보기 위해 서울로 왔다. 어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아픈 딸을 돌보고 출산부터 몸조리까지 도왔다. 출산 이후에는 딸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육아까지 맡았다. 국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데다 화재로 인한 충격을 심하게 받은 어머니는 “공부에만 전념하라”며 손주를 데리고 몽골로 귀국했다.

나랑게렐이 사는 반지하 층은 다 타버렸고 집주인이 사는 1,2층도 그을음이 심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생활용품도 타버렸다. 집을 복구하는 비용은 1200만원이나 든다고 했다. 하지만 가진 돈은 반지하 보증금 200만원이 전부다. 또 한 달 수입은 짬짬이 파트타임으로 버는 20만원에서 100만 원 사이다. 복구에 필요한 이 많은 돈을 어찌 마련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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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다 타버린 몽골인 화재피해가정. (사진=동대문소방서 제공) [email protected]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동대문소방서 허형찬 소방위는 나랑게렐을 서울소방재난본부 저소득(한부모) 가정 화재피해 복구지원 사업 대상자로 추천하고 에스오일,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집주인과 함께 십시일반 모금을 했다. 동대문소방서 대원들은 아기에게 필요할 기저귀부터 옷, 생필품을 모아 전달했다. 입주자의 실화이니 ‘보상하라’ 주장할 법도 한 집주인이 많은 금액을 보탰다. 모두 타버려 발 디딜 수조차 없던 집이 뚝딱뚝딱 3주 만에 깨끗하게 고쳐졌다.

 나랑게렐은 “몽골엔 이런 제도가 없어요. 처음 (지원사업)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기적인줄 알았어요.”라며 도움 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열심히 해야만 해요. 꼭 석사까지 마치고 돌아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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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다 타버린 몽골인 화재피해가정에서 동대문소방서 직원들이 잔존물을 제거하고 있다. (사진=동대문소방서 제공) [email protected]
화재피해복구를 지원한 많은 분들, 아이를 돌봐주시는 엄마, 자신과 떨어져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완벽히 공부를 마치지 않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나랑게렐은 꼭 대학원을 잘 마치겠다고 다짐한다. 내년 6월이면 어학원을 마치고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다. 석사까지 모두 마치는데 3~4년 예상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10월에 열린 한국어능력시험(토픽·TOPIK)을 봐야했는데 10월 초 화재가 발생해 시험을 보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내년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나랑게렐은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한다. 아이와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아픈 몸으로 아이를 봐주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동대문소방서 직원들도 외국인을 화재피해 복구 지원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자력에 의해 화재피해복구가 어렵고 지원을 통해 나랑게렐이 학업을 지속하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수줍은 미소를 짓는 나랑게렐이 큰 꿈이 있다고 말한다.
“노벨 프라이즈(Nobel Prize)"

과학자가 되고나면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하겠다고 말하는 나랑게렐의 눈빛이 반짝인다. 나랑게렐과 이야기를 나눈 이날 수은주는 영하 11도를 가리켰다. 하지만세상이 꼭 야박하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듯, 이날 햇살은 유독 눈부시고, 강렬하고, 따스했다.

<조수정의 사연(寫讌)은 사진 '사(寫)', 이야기 '연(讌)', '사진기자 조수정이 사진으로 풀어놓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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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다 타버린 몽골인 화재피해가정을 서울 동대문소방서 대원들과 에스오일, 서울사회복지협의회 봉사자들이 깨끗하게 복구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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