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정의 寫讌]몽골유학생 '나랑게렐'의 미소…'세상 야박하지 않아'
초인종을 누르자 “쿵쾅 쿵쾅 우당탕탕” 큰 소리가 나는 집 안에서 양손에 공구를 든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열린 문으로 탄내가 훅 풍긴다. 온통 새카맣게 불에 타버린 반지하 셋방, 봉사자들이 분주한 모습이다. 벽에 붙은 모든 것들을 다 뜯어내고 전선을 새로 연결하고 있다. 한 봉사자가 타고 그을린 벽을 긁어내며 이야기 한다. “발화점이 여기인가. 심하게 타고 다 녹아버렸어요. 큰일 날 뻔 했어.” 화마는 삽시간에 세 가족의 보금자리를 앗아갔다. 다행히 방안에서 갓 돌이 넘은 손자를 재우고 있던 할머니가 등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인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급히 대피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학생인 아기 엄마 나랑게렐(23)은 화재당시 외출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나랑게렐은 임신 중 많이 아팠다. 출산 전 아이 아빠와 헤어졌고 몽골에 계신 어머니가 아픈 딸을 돌보기 위해 서울로 왔다. 어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아픈 딸을 돌보고 출산부터 몸조리까지 도왔다. 출산 이후에는 딸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육아까지 맡았다. 국내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데다 화재로 인한 충격을 심하게 받은 어머니는 “공부에만 전념하라”며 손주를 데리고 몽골로 귀국했다. 나랑게렐이 사는 반지하 층은 다 타버렸고 집주인이 사는 1,2층도 그을음이 심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생활용품도 타버렸다. 집을 복구하는 비용은 1200만원이나 든다고 했다. 하지만 가진 돈은 반지하 보증금 200만원이 전부다. 또 한 달 수입은 짬짬이 파트타임으로 버는 20만원에서 100만 원 사이다. 복구에 필요한 이 많은 돈을 어찌 마련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나랑게렐은 “몽골엔 이런 제도가 없어요. 처음 (지원사업)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기적인줄 알았어요.”라며 도움 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열심히 해야만 해요. 꼭 석사까지 마치고 돌아갈 거예요”
동대문소방서 직원들도 외국인을 화재피해 복구 지원 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자력에 의해 화재피해복구가 어렵고 지원을 통해 나랑게렐이 학업을 지속하면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수줍은 미소를 짓는 나랑게렐이 큰 꿈이 있다고 말한다. “노벨 프라이즈(Nobel Prize)" 과학자가 되고나면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하겠다고 말하는 나랑게렐의 눈빛이 반짝인다. 나랑게렐과 이야기를 나눈 이날 수은주는 영하 11도를 가리켰다. 하지만세상이 꼭 야박하지만은 않다고 말해주는듯, 이날 햇살은 유독 눈부시고, 강렬하고, 따스했다. <조수정의 사연(寫讌)은 사진 '사(寫)', 이야기 '연(讌)', '사진기자 조수정이 사진으로 풀어놓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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