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분노와 불안으로 점철된 청춘의 자화상, 영화 '버닝'
충무로 최고의 리얼리스트로 손꼽히는 이창동(64) 감독은 달랐다. 청춘의 어두운 면에 천착하고, 청춘의 빛깔을 암울한 톤으로 만들었다. 8년 만의 신작 '버닝'은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를 담은 작품이다. 지금껏 청춘을 다룬 한국 영화는 많았지만 이토록 파격적인 경우는 없었다. 시종일관 어둡고 미스터리하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을 정도다. 영화는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가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 '혜미'(전종서)를 만나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등을 통해 공들인 미장센을 선보인 이창동 감독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청춘들의 각기 다른 상황을 의상과 집, 소품 등 다채로운 기법으로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여행에서 돌아온 혜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어느날 벤은 혜미와 함께 종수를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털어놓는다. 이때부터 종수의 일상은 무너져 내리고 세 사람 인생에 소용돌이가 친다.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다. 관객으로서는 다소 껄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설명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불친절한 영화다. 이것은 결국 감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감독은 "청춘은 인생에서 좋은 시절"이라는 말에 반문이라도 하듯, 삶의 지리멸렬함을 파헤쳤다. 세 청춘들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가난한 청년(종수), 부자 청년(벤)으로 대비되는 두 인물을 통해 빈부격차 문제도 짚었다. 종수와 벤이 타는 차, 사는 집 등이 명확한 대비를 이뤘다. 영화 전반을 이끄는 유아인(32)의 연기는 뛰어나고 강렬하다. 청춘의 고뇌와 일탈, 슬픔, 분노 등을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한국계 할리우드스타 스티븐 연(35)은 미스터리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신예 전종서(24)는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2006)의 김태리(28)를 떠오르게 한다. 수위 높은 노출 연기를 감행했다.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지나고 나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청춘 시절에는 현실이 팍팍하고 버겁게만 느껴진다.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 청춘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의 현 주소가 서사 저변에 깔려 있다. 시대의 무게를 한낱 개인이 견딜 방법이 있겠는가. 청춘의 잔혹한 이야기를 다룬만큼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147분, 청소년 관람불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