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스피커 전쟁①] 한글이 벌어준 시간…진격하는 토종 기업들
인공지능(AI) 기술을 일상에서 손쉽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는 'AI 스피커'가 잇따라 출시되며 한국인의 거실 풍경을 바꾸고 있다. 말만하면 채팅, 정보검색, 음악영화 감상, 가전제품 제어, 영어공부, 독서, 택시호출 등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I 스피커는 2014년 아마존이 자사 AI 비서 알렉사 기반으로 출시한 '에코'가 시초다. 이후 세계적으로 관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족보다 AI 스피커와 더 자주 대화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사 3곳, 네이버·카카오 등 포털사 2곳, 삼성전자·LG전자 등 전자제품 제조사 2곳 등이 AI 스피커 시장에 적극적이다. 이중 LG유플러스와 LG전자를 제외하고 모두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을 스피커에 장착했다. 해외보다 첫 AI 스피커 제품 출시가 약 2년 뒤졌지만 기술력은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T 공룡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한글을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천혜의 환경, 세계 최초 5세대(5G) 기술 상용화 등을 기반으로 공격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분석이다. ◇ 디스플레이 일체형 AI 스피커 경쟁 2R 정보통신기술(ICT) 및 전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초 AI 스피커는 2016년 9월 SK텔레콤이 내놓은 '누구'이다. 이어 KT의 '기가지니', 네이버의 '클로바 프렌즈', 카카오의 '카카오미니' 등 AI 스피커가 뒤이어 얼굴을 내밀었다. 국내 가전사도 최근 AI 스피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LG전자는 작년 구글의 AI 플랫폼을 장착한 '엑스붐 AI 씽큐'를 내놓은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국내에도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첫 AI 스피커 '갤럭시홈'도 조만간 출격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에는 디스플레이와 결합한 AI 스피커가 대세로 자리잡은 모습이다. AI 플랫폼, 음성명령 위주에서 영상과 미디어 콘텐츠를 아우르는 범위로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AI 스피커도 2017년 아마존이 출시한 '에코쇼'가 그 출발이다. 이어 구글, 페이스북, 레노버 등이 가세하며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통신사를 중심으로 화면 일체형 AI 스피커 경쟁이 뜨겁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디스플레이형 AI 스피커 '누구네모'로 를 선보였다. 5월에는 KT가 기가지니 테이블TV로, LG유플러스는 U+어벤져스로 보는 AI 스피커 시장의 경쟁에 가세했다. 앞서 KT는 작년 7월 화면이 달리 호텔용 AI 스피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2월 U+tv프리를 출시한 바 있다. 네이버 자회사 라인은 지난 3월 디스플레이 탑재형 AI 스피커 ‘클로바 데스크’를 공개했다. 단 이 제품은 일본에서만 판매되며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지난해 10월 '홈허브'라는 화면이 달린 AI 스피커를 내놓은 구글은 국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 "AI 스피커 올해 가정 10곳 중 4곳꼴로 보급 전망" 국내 AI 스피커 시장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이 견인하는 북미 등 주요 국가보다는 태동이 늦었지만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KT 디지털 미디어랩 나스미디어에 따르면 국내 AI 스피커 보급대수는 2017년 100만대 수준에서 작년 300만대로 늘었다. 올해는 8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집이 평균 한 대의 AI 스피커를 보유한다고 가정하면 전체 가구의 약 40%가 AI 스피커를 이용하게 되는 셈이다. 국내 AI 스피커 시장은 특이하게 통신사가 견인해 이목을 끌고 있다. 스피커와 IPTV 셉톱박스를 통한 AI 서비스 가입자는 지난달 기준 LG유플러스 290만(네이버 클로버 탑재), KT 170만이다. SK텔레콤은 관련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가입자의 상당 부분을 통신사가 점유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한 통신사들은 5G 네트워크 환경에서 AI 스피커가 실내 사물을 연결(IoT)하는 홈 허브(Hub)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중점 개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통신사들이 일찍부터 확보해온 콘텐츠도 한몫했다. 전국에 분포돼 있는 통신사 대리점, 체험관 등과 각종 통신 결합 상품도 통신사의 AI 스피커에 소비자들이 호기심과 친근감을 갖도록 유도했다. 아울러 글로벌 기업들이 소수 언어로 분류되는 한글을 기반한 AI 스피커 개발을 후순위에 둔 것도 국내 기업들이 시장 점유력을 확대하게 한 숨은 배경으로 꼽힌다. 또 통신사들과 카카오가 국내를 적극 공략하는 것과 달리 네이버와 가전사는 국내보다는 글로벌시장에 더 초점을 맞춰 대비를 이루고 있다.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을 탑재한 기업들은 기술력도 해외 기업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있다. 최준기 KT AI 기술담당 상무는 "글로벌 기업과 AI 스피커의 인터페이스상 큰 기술력 차이는 없다"며 "아마존, 구글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문장 외에 자연어 이해, 추론까지 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현상 SK텔레콤 AI사업유닛 사업기획셀장도 "국내 AI 스피커 음성인식 수준 등 기술적인 완성도는 글로벌 기업들과 유사하다"며 "단지 시장 규모에 차이가 있어 제삼자와의 제휴를 통한 서비스 다양성은 해외 사업자에 못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외에서 출시되는 AI 스피커는 현재 아직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즉 자연어를 이해할 수 있는 장벽까지 넘지는 못했다. 실제 이동통신 전문 리서치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작년 10월에 실시한 ‘제28차 이동통신 기획조사’에서 AI 스피커 이용자의 전반적 만족률은 45%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스마트폰의 AI 서비스의 만족도 41%보다는 높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과는 큰 거리가 있다. 특히 음질, 디자인, 콘텐츠, 다양한 기능, 가격, 자연스러운 대화 가능, 음성인식 정확도 등의 항목 가운데 자연스러운 대화 기능에 대한 점수가 크게 뒤처졌다. 개인화, 추론 능력 등도 향후 보완해야 하는 AI 스피커 기능이다. 최준기 상무는 "지금은 "OO TV 프로 틀어줘"라는 명령을 실행하는 데는 문제 없지만 "어제 재미있게 본 프로 틀어줘"라는 개인화, 추론 능력이 필요한 명령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AI 스피커 플랫폼 개발사들의 과제이다"라고 전했다. 또 현재는 가족 공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미래 AI 스피커는 화자인식·얼굴인식 등 기술 발전으로 고객에게 개인화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연어 이해, 추론, 개인화 등의 산을 가장 먼저 넘는 기업이 AI 스피커, 나아가 AI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관건으로 꼽히고 있다. ◇ 영화 아이언맨 AI 비서 '자비스'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AI 비서 '자비스'와 함께 스마트한 파워를 발휘한다. 자비스는 아이언 수트 도색 등 지시한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는 것은 물론 주인과 농담을 나눌 정도의 지능을 갖췄다. 최근 나오는 AI 스피커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최상위 기술로 꼽히는 이러한 AI 기술을 일상에 구현한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자체 AI 플랫폼 클로바를 개발하고 있는 네이버 관계자는 "향후 AI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는 무한하다"며 "AI 스피커는 AI 기술을 일반인들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고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다"라고 풀이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미니 스피커는 통합 AI 플랫폼 카카오 i를 접목해 선보인 첫 기기이며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첫 시작"이라며 "스피커에 한정하지 않고 자동차, 아파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카카오 i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개인마다 자비스 같은 비서를 둘 날은 멀지 않다는 관측이다. 최준기 상무는 "과거에는 한 기업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개발했지만 지금은 AI 기술이 논문 등을 통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며 "또한 딥러닝 기술 등이 자연언어 처리 추론력 개발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등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는 AI 기술은 만나볼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한글 기반 AI 기술 개발이 지금은 글로벌사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로 작용하더라도 향후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하는 데 장애나 부담이 될 우려에 대해서는 기우라는 지적이다. 최 상무는 "현재는 한글에 초점을 맞춰 개발하고 있지만 자연어까지 이해할 수 있는 지능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다른 언어로 확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한글은 AI 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로 진출하는 데 장애물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