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범죄인 인도법' 무기연기 됐지만…위기의 '일국양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9SCMP) 등에 따르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의 다양한 우려를 반영해 법죄인 인도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정안을 완전히 철회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대한 홍콩인의 대규모 반대시위 사태는 중국 정부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빠르게 밀어붙여온 '중국화'에 대한 홍콩인들의 거부감이 폭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됐지만 중국과 영국의 합의에 따라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정치, 입법, 사법체제의 독립성을 보장 받고 있지만, 최근들어 홍콩인들 사이에서는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홍콩 정부가 추진해온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홍콩 행정부와 사법부가 법적 감독 없이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게 된다. 홍콩은 영국, 미국 등 20개국과 인도 조약을 체결했지만 중국과는 반환 이후에도 맺지 않고 있다. 중국 사법제도의 불투명성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가 박탈될 것이라는 우려, 중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홍콩내 반중인사 또는 인권운동가를 본토로 송환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남성이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홍콩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홍콩 당국은 이를 명분 삼아 지난 2월부터 법 개정을 밀어붙여왔다. 홍콩의 경제적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재계의 반발에 탈세 등 경제 관련 범죄 9종을 인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빼면 형사 용의자는 물론 정치범도 중국 본토에 인도돼 일국양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은 개념치 않는 모양새이다. 지난 9일 홍콩 전체 인구 744만명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103만명(주최측 추산)이 참여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대 규모 시위가 열렸지만, 람 행정장관은 이틀 뒤인 6월11일 기자회견을 열어 개정안에 인권 보장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겠다면서도 홍콩에 정의를 세우고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개정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입법회도 친중 성향인 건제파(建制派)가 의원 정수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어 개정안 강행에 걸림돌은 없다. 앤드루 렁 입법회 의장도 지난 11일 정부의 요청에 따라 향후 개정안과 관련해 61시간의 심의 시간만 부과하고, 심의가 끝나는 20일 표결을 하겠다며 럼 장관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홍콩 입법회는 교사와 대학생, 고등학생,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가 등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수만명의 시위대가 개정안 심의를 저지하기 위해 입법회 청사로 진입하는 지역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봉쇄하자 12일로 예정했던 2차 심의를 연기했다. 하지만 개정안을 철회하라는 시위대와 야권의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경찰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뒤 시위대에게 물대포와 최루액,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진압도 시도했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적어도 20여명의 시민이 다쳤다. SCMP는 홍콩정의센터 전 선임 정책 자문관인 사이먼 핸더슨을 인용해 시위대를 하나로 묶는 것은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자 개정안이 홍콩의 자치권을 더 훼손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상바오는 2015년 중국이 금지하는 도서들, 즉 금서(禁書)를 판매하던 홍콩 서점 주인들이 중국에 납치돼 조사받은 사안을 상기시키면서 지금까지 중국의 이런 행보는 납치로 비판받았지만, 법이 제정되면 합법적 인도가 된다고 전망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화를 시도하면서 홍콩에서는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이 강제 해산되거나, 야당 후보의 입법회 피선거권이 박탈당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교육당국은 지난해 9월 모든 중학교에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어떠한 징후에도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당국은 중국 국가인 의용국 행진곡을 모독시 최장 3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정부가 무력을 사용, 강제진압에 나서는데 찬동하는가'는 질의에는 "그렇다"며 "홍콩 번영과 안정을 해치는 어떤 행위도 홍콩의 주류 여론이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 필요하면 강경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묵인하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했다.
그는 "홍콩이 중국에 귀속한 이래 '일국양제', '항인치항(港人治港), 고도의 자치 원칙이 철저히 시행되고 있다"며 "홍콩 주민이 향유하는 갖가지 권리와 자유는 법에 의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미국 측이 이런 사실을 존중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겅상 대변인은 미국 국무부의 비판 성명에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지난 10일 개정안에 반대하는 세력이 외국 세력을 등에 업고 시민들을 움직였다고 비난했다. 차이나데일리도 야당과 외국 세력이 시위를 주동했다면서 홍콩에 혼란을 일으켜 중국에 해를 끼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