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총체극은 이런 것,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그런데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만큼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11월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초연되는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예술가의 광막한 마음의 풍경과 결을 보여준다. 공연 기획사 페이지원(PAGE1)이 제작하고, 공연계에 관심을 쏟고 있는 카카오가 투자한 공연이다. 영국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리언'이 올바른 표기이나 공연 제목은 '도리안')이 원작. 소설은 1890년 6월 20일 발간된 '리핀코츠 먼슬리 매거진' 7월호 표제작으로 실렸다. 수정·증보 과정을 거쳐 1891년 4월 장편소설로 출간됐다. 공연연출가 이지나가 선장으로 나선 총체극은 19세기 원작의 배경을 현재로 가져왔다. '2019년의 현재를 살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라면 어떤 도리안 그레이와 그 친구들에게 어떤 생명력을 부여했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원작에서 관능과 선정의 상징인 도리안은 총체극에서 섬세하지만 예민한 예술가 제이드로 그려진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영원히 쾌락의 끝을 달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제이드는 현대의 환청과도 같다. 사실과 환상, 살인과 집착, 동성애적인 요소 등 원작의 묘사가 이번 총체극에 집약됐다. 미술, 영화, 드라마, 무용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원작이 해체되고 조립돼 극에 녹아들어간다. 공연 제목 앞에 '콜라보(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라는 수식을 단 이유가 수긍이 된다. 이 연출을 필두로 뮤지션 정재일·현대무용가 김보라·무대미술가 여신동 등 내로라하는 공연 예술가들이 뭉친 덕에 이질감이 없다. 원작의 뼈대는 건드리지 않고, 아찔한 원작 여행을 지금 이 시대에 해내고 만다. 2차원 예술인 소설이 시간과 공간의 3차원 예술인 공연을 거쳐, 관객들이 각자 만들어내는 4차원 상상과 만난다. 다방면의 입체감을 안기는 이 공연의 내용과 장르를 쉽게 규정하기는 힘들다. 여러 장르와 기술을 합친 총체극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공연을 보면 깨닫게 된다. 웅웅거리는 무대로 시각과 청각, 나아가 생각의 감각을 일깨우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과 인생의 스테레오 효과를 체감하게 된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더 데빌' '포에틱' 등 평소 시적인 연출법을 선보인 이 연출은 이번에 한발 더 나아간다. 2016년 역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원작으로 삼고 뮤지컬스타 김준수를 내세운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로 'MTV 콘서트형 뮤지컬'이라는 '신종 뮤지컬'을 탄생시켰던 이 연출은 이번에 좀 더 전위적이다. 하지만 그림, 사진, 영상 그리고 소셜 미디어 속에 얼굴을 남겨도 외로움을 떼어낼 수 없는 우리에게는 이런 혼동이 묘한 위로를 안긴다. 이미지, 텍스트 홍수 속에서 망각의 계곡으로 아픔을 떨구려 해도, 되레 상처 받는 우리들의 마음을 복원하려 애쓰는 작품이다. 초현실적 마음 풍경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자칫 추상적일 수 있는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화려한 배우들의 열연이다. 같은 역을 성별이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다. 제이드 역은 발레리나 김주원과 연극 '어나더 컨트리' 한편을 통해 대학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문유강이 나눠 맡는다. 원작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뽐낸 귀족 화가 '배질 홀랜드'는 이번 총체극에서 화가 유진으로 재해석되는데 소리꾼 이자람을 비롯 배우 박영수, 신성민, 연준석이 나눠 연기한다. 원작에서 사교계를 이끌어가는 귀족 '헨리 워튼'은 킹메이커 '오스카'로 바뀌었고 마이클 리, 강필석, 김태한이 번갈아 담당한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캐스팅은 김주원과 이자람이다. 제이드의 혼란한 마음과 생각을 김주원은 유연하고 격렬한 몸짓으로 대변한다. 이자람은 노래 없이 연기력만으로도 무대 위에서 승부할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한다. 팝, 록, 클래식, 재즈 등 변화무쌍하게 장르가 변화하는 정재일 음악감독의 음악도 귓가를 감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