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시각의 비밀에 한걸음 더 다가서다
심미안. 그것 참 오묘한 괴물이다. ‘아름다움을 찾는 안목’. 그게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사람이고 사람의 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美)를 알아보는 것은 눈에서 시작되는가. 두뇌에서 시작되는가. 이런 질문을 앞세우면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2015년, 인터넷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드레스'라고 불렸던 사진이다. 드레스의 색이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여 순식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어떤 이들은 사진 속 드레스가 파란 천에 검은 레이스가 달렸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흰색에 금색 레이스가 달렸다고 했다. 완전히 판이하게 다른 색으로 인식하는 두 개의 그룹은 서로의 눈에 비치는 옷의 색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원인은 우리의 뇌가 눈에 보이는 색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저자는 '드레스 색 논란'처럼 색의 시각적 불일치를 비롯해 착시, 광원효과, 선의 움직임 등 우리 주변의 시각 환경과 화가들이 사용하던 기법을 뇌 과학과 시각심리학적 관점에서 밝혀나간다. 다시 말해 이런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시각의 신비를 파헤쳐 명화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화가와 시각연구자는 같은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며 시각의 비밀을 알아내고, 시각연구자는 연구를 통해 화가가 발견한 비밀을 공유한다. 화가가 남긴 그림은 시각연구자의 논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발견의 기록이고, 새로운 발견을 위한 실험의 결과다."('들어가며'에서) 예컨대 물감을 아무렇게나 흩뿌린 것 같은 미국작가 잭슨 폴록(1912~1956)의 작품을 보자. 기하학을 기초로 하는 프랙털 해석에 따르면 폴록의 작품은 부분의 형상이 전체 형상과 비슷해 일정 부분을 확대하면 같은 형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프랙털 구조이다. 프랙털에는 자기 유사성을 가진 경우와 통계적 성질이 유사한 경우가 있는데, 후자는 주로 자연계에서 볼 수 있다. 구름, 갈라진 나뭇가지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 리처드 테일러(오리곤 대학교수)는 폴록의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자연의 리듬을 그린 것이라고 직감한다. 그는 플록이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 그린 작품을 해석해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랙털 차원의 값은 상승했고 그림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폴록의 전성기인 1948년의 작품에서 나타난 프랙털 차원의 값은 1.5정도로 자연계와 비슷했다. 저자가 이런 내용을 일본의 심리학 학술지에 소개했더니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의 도모나가 마사키가 슈퍼침팬지 ‘아이’가 그린 선(線) 그림의 프랙털 차원 값을 알려왔다. 침팬지 그림에서는 플록에게 나타난 선형 프랙털 구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침팬지가 그린 ‘선 그림’ 역시 볼만했지만 플록과의 차이는 의외로 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폴록이 자유롭게 그린 것 같지만 실은 엄청난 계산 과정을 거쳐 화면을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폴록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빠르면 이틀, 길게는 반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행동은 순식간이었지만 그것을 표출해내기까지의 긴 고민과 사고의 정지가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을 것이다."('아무렇게나 그린 그림')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책을 읽다보면 미술작품에 숨어 있는 과학적 행위를 찾아내는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과학자가 실험을 통해 특정 현상을 발견해 세상에 알리듯, 오히려 과학계의 발견보다 앞서 시각적 비밀을 탐구했음에 놀라게 된다. 심리학을 전공한 후 인간환경학 연구활동을 해온 규슈 대학교 명예교수. 지종익 옮김. 아트북스, 251쪽, 1만6000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