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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국립발레단 새 수석무용수 박예은 "취미도 발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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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2-09 10:36:13  |  수정 2020-02-17 09:31:00
2012년 준단원 입단
테크니션서 드라마 전달까지 좋은 무용수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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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예은. (사진 = 국립발레단 제공) 2020.02.09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세상의 중심이 박예은(32)의 발끝으로 모인 듯했다. 왕자 4명이 청혼을 하는 긴 시간 동안 그녀의 '푸앵트(Pointe)' 동작은 흔들림이 없었다.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한쪽 다리 발 끝으로만 서 있어야 하는데 평온했다.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1막에서 오로라 공주의 '로즈 아다지오'는 발레리나를 위한 선물 같은 장면. 하지만 고난도라 웬만한 무용수는 소화하기 힘들다.

박예은은 지난해 4월 이 작품의 오로라 역으로 재발견됐다. 이전까지 박예은은 '짱짱한 회전력'이 탁월한, 화려한 기술의 테크니션으로 통했다. 재기발랄한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 말괄량이 '키트리'가 나오는 '돈키호테' 갈라가 그녀의 전담이었다.

그런데 오로라 역은 박예은의 다른 결을 보여웠다. 여성스런 선과 연기다. 최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에서 만난 박예은은 "오로라 공주가 제 전화점이 됐어요. 이전까지 제 캐릭터가 파워풀했거든요. 턴을 장점으로 하다 보니 테크니션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죠. 그래서 여성스러운 역을 많이 맡지 못했는데 오로라가 기점이 됐죠"라고 말했다.

오로라 역을 위해 팔동작인 '폴드 브라' 연습을 많이 했다. 여리여리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캐릭터 연구도 열심히 했다. 테크닉보다는 선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

하지만 고전발레의 가녀린 공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캐릭터를 그대로 답습하면 박예은이 아니다. 앙증맞지만 좀 더 활기찬 리듬을 부여한 미래지향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이렇게 꾸준히 성장해온 박예은은 입단 8년 만인 최근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2012년 준단원(코르드 발레2)으로 입단해 1년만인 2013년 정단원(코르드 발레1)으로 승급했다. 2014년 연말 '호두까기인형'에서 '마리' 역으로 성공적인 주역 데뷔전을 치렀다.

박예은은 마리 역에 대해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어요.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고 특히 회전에 신경을 썼죠"라고 돌아봤다. 힘차지만 안정된 회전이 박예은의 장점 중 하나다. 비결을 묻자 "굉장히 많이 돌아요"라며 수줍게 웃는다.

"회전 감각이라는 것이 많이 돌면 돌수록 발달하거든요. 회전을 잘 하는 무용수는 많은데 그 기복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죠.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틈나는대로 도는 거예요."

박예은은 발레단 내 '성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2015년 드미 솔리스트, 이듬해인 2016년 솔리스트로 매년 한 등급씩 승급하며 꾸준히 성장해왔다.

타이틀롤을 제외하고도 '백조의 호수' 중 스페인 공주·네마리 백조·파드 트루아, '호두까기인형'의 콜롬빈과 스페인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 중 파랑새, '지젤'의 투윌리, '마타 하리'의 카르사비나,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비앙카 등을 맡았다.

특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오로라를 비롯 파랑새, 보석, 요정 등 이 총 다섯개 배역을 거쳤다.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온 만큼 몸이 힘들기는 하지만 "여러 경험이 주어진 덕분에 성장했다"며 긍정했다. 오로라 역을 맡았을 때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 무대의 구석구석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그 덕분이었을 것이다. 
 
작년 국립발레단 드라마 발레 '호이 랑'의 타이틀롤을 맡은 것도 그녀의 진가를 확인시켜줬다. 조선시대 홀아비와 살던 효녀로,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군역을 맡는 '부랑'의 이야기가 바탕.

칼과 활을 든 주역 발레리나의 몸짓은 강렬했지만 전쟁이 아닌 장면에서 랑은 굉장히 여성스럽다. 주역 무용수가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인 셈이다. 작품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동화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예은은 이 작품을 통해 무엇보다 '드라마 전달'에 신경을 썼다. "표정 연습을 많이 하고, 마임도 공부하고 호흡도 연기했어요. 호흡을 얼마만큼의 간격을 두느냐에 따라 연기 느낌이 많이 달라지니까요."

발레단으로부터 수석무용수 승급 통보를 받았을 당시에는 "꿈 같았다"고 했다. 그녀가 발레를 시작한 때는 다섯 살 때. 호암아트홀 무대감독을 지낸 아버지 덕에 공연을 많이 접했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내한공연 때는 '꽃순이'를 맡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발레.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발레 그만하고 공부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발레를 계속하고 싶었던 박예은은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며 발레를 계속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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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호이 랑. (사진 = 국립발레단 제공) 2020.02.09 realpaper7@newsis.com
하지만 예원학교 재학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집에서 발레를 하는 박예은에게 더 이상 힘을 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외동딸로 부모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착한 딸'인 박예은은 알겠다며 부모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발레에 대한 애정도 컸다. 단칸방 바로 옆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펑펑 울었는데 어머니의 그녀의 울음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더 열심히 해볼게. 발레 계속하자." 이번에 승급 소식을 알리는 박예은의 전화 통화 너머로 부모는 한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국립발레단 입단도 쉽지 않았다. 2012년 7월 국립발레단 인턴 오디션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지켜보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무급으로 인턴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같은 해 10월 정준단원 오디션을 준비했다.

그런데 오디션 한달 전에 사고를 당해 왼쪽 발목이 돌아갔다. 총 6주간 깁스를 해야 완치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4주 만에 깁스를 풀고 오디션을 치렀다. 발레단에서는 "평생 발레를 못할 수도 있다"며 다음 시험을 제안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박예은을 휘어감았다. 진통제도 맞지 않고 오디션을 치렀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당시 몸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박예은은 항상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연구를 한다. 개인적으로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피겨선수 김연아, 체조선수 손연재의 몸관리를 맡았던 송재형 트레이너를 바빠도 1주일에 한번은 찾는다.
 
이처럼 스스로 노력을 멈추지 않음에도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이라며 공을 돌렸다. "부모님이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 올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립발레단은 '호이 랑'(3월 27~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재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박예은이 수석무용수가 된 이후 타이틀롤서 처음 출연하는 작품이다. 랑은 자신과 겹쳐지는 것이 많은 캐릭터라고 박예은은 설명했는데 효심이 지극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보니 자연스레 수긍이 됐다. 

"그동안 쌓아온 그녀의 성실함과 열정이 수석무용수라는 타이틀과 만나 무대에서 더 아름답고 큰 빛을 발할 것"이라고 한 가득 용기를 실어준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리고 자신을 발레단에 발탁한 최 전 예술감독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빼놓지 않았다.

박예은은 평소 맡고 싶어하는 캐릭터로 세 가지를 꼽아왔다. 지난해 데뷔한 오로라 공주를 비롯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지젤'의 '지젤'이다. 

취미를 따로 두지 않고 '발레 자체'를 취미로 삼은 그녀는 캐릭터 연구를 틈날 때마다 한다. 동시에 인생을 멀리 내다보고 있다. 현장을 뛰는 무용수의 생명력이 길지 않은 만큼 공부를 병행하기로 했다. 올해 국민대 일반대학원 무용학과에 진학한다. 수석무용수로 승급하기 전부터 결심했다.
 
공연예술대학원을 가면 논문을 쓰지 않고 공연으로만 졸업이 가능하지만 박예은은 논문을 쓰며 좀 더 학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했다. 문영 국민대 무용전공 교수를 스승으로 선택한 이유다. "몸을 어떻게 써야 부상을 다치지 않나 등의 대해 쓰고 싶어요. 발레 대중화 콘텐츠에도 관심이 많고요." 무대에 서 있을 때만큼 눈빛이 총총 빛났다.

차분한 박예은은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여유 있는 호흡을 가지고 있다. "더 잘하려고 욕심을 부릴 때 놓칠 때가 더 많더라고요. 모든 일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겸손하게 해나가고 싶어요."

수석무용수는 실력뿐만 아니라 태도로도 다른 무용수와 관객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는 자리. 국립발레단은 또 든든한 수석무용수를 얻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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