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말도 줄었다...'침묵의 미래'가 불안하다면?
백남준아트센터 올해 첫 기획전 8일부터 온라인서 소개김애란 소설서 아이디어...작가 8명 영상등 11점 전시코로나19로 잠정 휴관중...전시 개막은 추후 공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찌될까.” 아무것도 장담할수 없는 '코로나 시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이제 전 세계인의 공통 감정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공포는 인간의 나약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나와 다른 존재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과의 말하기도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말이 없어진다면, 언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백남준아트센터가 올해 첫 기획전으로 선보인 '침묵의 미래: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에서 살펴볼수 있다. 우리의 불안이 과연 다른 종, 다른 대상, 다른 언어로부터 비롯하는지, 미래에 하나의 목소리만 남는다면 그 불안은 과연 사라질 것인지 질문한다. 어떤 언어가 스스로의 행방을 묻는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소설 '침묵의 미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됐다. 이 전시가 8일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공개됐다. 원래 2월 27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백남준아트센터가 임시 휴관하면서 관객과 만나지 못했다. 현재 잠정 휴관중인 백남준아트센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시민들의 지친 마음에 예술이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며 "준비해둔 전시를 온라인에서 소개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전시는 이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의 전시 투어로 열린다. 한국은 물론 미국 뉴욕,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레바논 베이루트 등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한 작가 8명의 영상 8점, 설치 3점, 총 11점의 작업이 전시됐다.
“미디어에 대한 모든 연구는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백남준의 어록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기술의 발전과 연동한 언어의 변화와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는 작가들의 탐구는 우리 내면에 잠재된 편견과 혐오, 문명사회 전체에 들이닥친 양극화의 명암을 드러낸다. 전시 제목 그대로 소멸하는 언어를 주제로 작업해온 김우진은 '완벽한 합창' 4채널비디오 작업으로 제주어와 함께 해녀라는 삶의 형태 또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역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제시 천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라는 영어의 권위와 파급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영어 학습 교구, 동영상, 학습지를 재료로 영상, 사운드, 설치 작업으로 언어의 물리적 형태와 심리적 태도를 재구성한다. 로렌스 아부 함단의 '논란의 발화'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빚어내는 결정적인 오해나 오역의 순간들을 실제 입 크기와 유사한 디오라마로 제작해 발화의 순간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직접적인 사례와 증거로 드러낸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활동하는 로렌스 아부 함단은 2019년 영국 미술상 터너프라이즈를 공동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5만개의 레고 브릭을 사용해 '오즈의 마법사' 영화 스크립트를 점자 언어로 나타낸 문재원은 시각 뿐 아니라 촉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신작을 구상했고, 이주호 & 이주승 형제는 두 눈의 시력이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작 '두 개의 시선'을 통해 장애를 대하는 편견과 숭고한 시선 사이에서 질문을 던진다. 언어의 끝에서 만난 음악을 매개로 한 형제의 짧은 다큐멘터리는 백남준아트센터 커미션으로 처음 선보인다. 최근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호주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던 안젤리카 메시티는 3채널 영상 '말의 색깔'을 통해 그간 꾸준히 탐색해온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살아 움직이는 신체의 몸짓 언어와 음악, 그리고 침묵에 대한 새로운 방식과 관점을 제안한다. 전시는 기계의 생성과 소멸을 좇으며 기술 발전과 연동한 인간의 사고와 소통 방식의 변화에도 주목한다.
'커런트 레이어즈' 연작으로 당대의 인간이 생각하고 존재하는 방식에 주목해온 염지혜는 컴퓨터의 시작에서부터 사용자의 죽음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를 통해 컴퓨터에 접속한 인간이 눈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표현하고, 배포하는 방식, 나아가 모니터 앞에서의 권력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보여준다. 가상현실을 주제로 탐구해온 로렌스 렉은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는 AI의 생성과 소멸을 다룬 영상 '지오맨서'를 통해 젊은 인공지능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오히려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의 언어와 윤리,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미래에 대한 상상이 우리의 현실 인식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다. 언어는 곧 존재의 증명으로, 낯선 존재와 다름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결국 단일한 목소리만 남는 미래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환기시키는 전시다. 6월 28까지. 전시 개관은 코로나 사태에 따라 추후 공지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