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화가' 변시지, 황토색에 버무린 고독·그리움
가나아트센터 '시대의 빛과 바람'전시38년간 제주시절 작업 40여점 공개
이번 전시는 화가 변시지가 50세 되던 1975년 제주로 귀향, 38년간의 제주시절(1975~2013) 작업 40여점을 선보인다. 황토빛 노란색이 탈법(脫法)과 진화를 거쳐 변시지의 고유한 화법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변시지는 누구? 변시지는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인 1931년, 가족과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그림공부를 했다. 그림을 시작한 건 우연한 사고때문이었다. 1933년 소학교 2학년 가을, 교내 씨름대회에 출전해 동급생들을 모두 제압하고 상급생과 대결하다가 다리를 다쳤다. 마음대로 뛰어놀지 못하게 된 소년은 그림에 빠졌고 3학년 때, 아동미술전에서 오사카 시장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옮겨 아테네 프랑세즈 불어과에 입학했다. 변시지는 그해 당대 일본 화단의 거장이자 도쿄대 교수였던 데라우치 만지로(1890~1964) 문하생으로 입문하여 서양 근대미술 기법을 배우게 되었다. 인물화로 일가를 이룬 스승 데라우치 만지로에게 후기 인상파의 표현주의 기법을 익히며 인물화와 풍경화에 집중했다. 한국작가임에도 불구하고 1948년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 화단인 ‘광풍회전(光風會展)’에서 23세의 나이로 최연소 최고상을 수상하고, 24세에는 광풍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2007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작품 2점이 10년간 상설 전시되어 주목을 받았다.
변시지의 화풍은 크게 일본시절(1931~1957), 서울시절(1957~1975), 제주시절(1975~2013)로 분류된다. 이 중 제주시절은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한 그만의 독특한 화풍이 완성된 시기다. 구도자처럼 그림에 몰두했던 제주시절은 성찰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현대인의 고독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귀향... 이 시기야말로 내 화폭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방황하게 했던, 급기야는 절망의 끝까지 다가가게 했던 시기였다. 고궁의 풍경이나 기법을 그대로 담은 제주 풍경이 아닌 ‘제주만의 제주’ 그 향토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변시지 작가노트) '황토색'은 작가 변시지 고유의 색이다. 제주의 아열대 태양빛이 작열할 때 황토빛으로 물든 자연광을 발견하면서 작가가 체득한 색이다. 황토색 바탕 위에 검은 선묘로 대상을 표현한 독창적인 화법을 탄생시켰다. 생전 '제주화가'로 국한되는것을 거부했다.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가라 한다. ...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으로 내가 꿈꾸고 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주도’라는 형식을 벗어난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의 고독감, 이상향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것이다.”(변시지 작가노트)
소년과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람, 조랑말, 까마귀와 해, 돛단배, 초가, 소나무 등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침몰할 듯 위태로운 작은 돛단배 한척은 이 수평선의 경계 끝까지 다가서고 있다. 노인의 시선은 고개는 숙이지만, 발걸음은 늘 그 수평선 너머로 향하고 있다. 송정희 공간누보 대표는 이번 전시글에 "변시지는 제주사람들의 꿈과 이상향인 ‘이어도’를 소재로 끌어들여 자신의 예술세계와 중첩시켰다"고 소개했다. "그의 그림이 외롭고 쓸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는 것 같지만, 위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변시지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 심상을 표현하고, 그를 극복하려는 고결한 정신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전시는 11월15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