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을 남북미 대화 돌파구로'…文 평화 구상 통할까
美 오브라이언, 북미 대화 재개 시점으로 도쿄올림픽 첫 언급北 참가 성사 시 남북미일 외교 공간…'제2 평창 효과' 기대文대통령, 신년회견서 언급…"도쿄올림픽 평화 촉진 장으로"유엔 연설서 '종전선언' 재화두…북미 협상 견인 목적 풀이전문가 "도쿄올림픽 쉽지 않아…北, 참가 명분 찾기 어려워"
여기에 도쿄올림픽 개최를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적절한 시점으로 본다는 미국의 반응이 공개적으로 나오면서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의 '도쿄 구상'의 성패를 떠나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이 남북·한일·북미·북일 관계 등 남북미일 4개국 각자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치열한 외교적 공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1년 늦춰졌던 도쿄올림픽은 스가 총리의 취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레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개최 강행 여부가 불투명해졌지만, 스가 총리가 전임자가 남긴 사업을 이어받기로 하면서 불확실성이 제거된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스가 총리 취임 계기로 마련된 한일 정상통화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모색을 제안하며 도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한다는 유화적인 메시지를 건넸다. 스가 총리는 이에 대해 사의를 표명했다. 단순한 인사치레보다는 한일 정상 간 현재의 경색 국면을 타개할 명분으로 도쿄올림픽이 적절한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서로 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첫 미국 방문 직후 미국 측에서 도쿄올림픽 개최에 대한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이목이 쏠렸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애스펀연구소 화상대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 희망 의사와 함께 적절한 시점으로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을 제시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비핵화와 관련해 "우리는 정말 어떤 진전을 보고싶다"면서 도쿄올림픽을 거론한 뒤 "내년에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바로 직전 서 실장이 본인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직후였다는 상황을 감안할 때 한미 간에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와 관련한 로드맵을 공유한 결과적 발언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18일 "서 실장은 방미 기간 동안에 미 측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제반 구상을 전반적으로 협의했다는 데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 "(비핵화 협상의) 구체적인 시간표 관련 대화가 오갔는지 여부는 공개하기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대(對) 중국 견제를 당면한 최우선 정책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느슨해진 한미일 삼각공조 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강제노동 피해자 배상 문제로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일 관계를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해결할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동시에 장기 교착 상황에 놓인 북미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명분으로 도쿄올림픽 무대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에 북한이 호응하며 대화 분위기가 이어졌던 경험칙을 도쿄올림픽에서 재현 가능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교착 상태에 놓인 남북 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한 이른바 '도쿄 구상'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은 남북 간에 있어서도 일부 단일팀 구성이 합의돼 있고, 공동 입장 등 방식으로 한반도를 위한 평화를 촉진하는 그런 장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며 "뿐만 아니라 한일 간의 관계 개선이나 교류를 촉진하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빗장을 걸어잠근 상황에서 스포츠 교류를 지렛대로 남북 간 접촉면을 만들다 보면 관계 복원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도쿄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경기에 공동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나아가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유치에 협력한다는 내용은 9·19 평양공동선언에도 명시돼 있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 이행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올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4·27 판문점선언에 담긴 종전선언을 국제사회를 향해 화두로 다시 꺼내든 것도 남북 정상 간 합의 이행 노력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서 실장이 미국 방문 과정에서 이러한 우리 정부의 구상을 설명하고, 설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을 무대로 북미 정상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다시 마주 앉을 수 있도록 중재하고, 현재까지 선제적으로 취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로 정치적 선언 수준의 종전선언 카드를 제시하는 조건으로 대화판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 문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도쿄 구상'의 궁극적인 로드맵으로 평가된다. 비록 미 대선일이 보름밖에 남지 않아 모든 것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혹은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 2가지 경우 모두 대북정책 라인업을 새로 꾸릴 수 밖에 없다는 점까지 감안해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재개 시점을 8개월 여 뒤인 도쿄올림픽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구상과 달리 내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장담할 수 없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2016년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대북정책 라인을 꾸리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던 것도, 새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라인업을 8개월 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다소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방역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북한이 도쿄올림픽에서 선수단을 파견할지 여부 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내년 1월 8차 당대회를 통해 결정하게 될 새로운 전략노선에 따라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더이상 고수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도쿄올림픽을 활용하는 카드는 정부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북한 입장에서도 평창 때 코스를 답습하는 수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비핵화 협상을 반복하고 싶어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2년 전에는 북한이 정권 수립 70주년(9·9절)을 앞두고 제시할 성과물이 필요한 내부적 동기 부여가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이 가능했다"며 "하지만 그 이후 종전 선언과 영변 카드에 기대를 걸었다가 이미 두 차례 실망한 김정은 위원장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새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