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목숨 건 월남·월북…맨몸으로 DMZ 넘는 사람들
고성군 철책 넘은 북한 남성, 과감한 행동 눈길2004~2005년 철책 넘는 월북, 월남 사건 발생2012년 고성 22사단서 발생한 노크 귀순 연상DMZ 넘어 월북한 사람 중에는 군인들이 다수
※ '군사대로'는 우리 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박대로 기자를 비롯한 뉴시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군의 이모저모를 매주 1회 이상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이 우리측의 교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남과 북을 넘나드는 월북·월남 사례는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남북 당국 간 사이는 좋지 않지만 비공식적인 인적 교류는 계속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이달 초 강원 고성군 동부전선 최전방에서는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철책을 넘어온 북한 남성이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북한군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비무장지대 북방 한계선 철책과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뒤 우리측 철책까지 넘는 놀라운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죽음을 무릅쓴 과감함이 주목 받았다. 철책을 넘은 뒤 민간인통제선 북쪽 숲속에 은신했던 이 남성은 밤새 미확인 지뢰지대를 휩쓸고 다니는 등 군에 붙잡히기 전까지 무모할 정도로 행동했다.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추정이 가능하지만, 그가 민간인이라는 점 외에 귀순 동기와 사회적 배경 등은 추가로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민간인이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철책을 뚫었다는 점에서 2004년 중부전선 월북 사건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2004년 10월26일 강원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철책이 뚫린 채 발견됐다. 군은 철책 절단형태가 북한의 침투 특징인 'ㄴ'자나 'ㄷ'자가 아닌 'ㅁ'자 형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나있는 점, 현장 족적과 손자국 등이 남에서 북으로 찍혀있는 점, 무장공비 침투와 관련된 특이점이 없는 점으로 미뤄 우리 민간인이 월북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5년 북한군 병사 월남 사건 역시 이번 동부전선 사건과 닮았다. 북한 강원도 평강군 방공포병사령부 예하 122㎜ 포병부대 소속인 초급 병사 리용수는 2005년 6월12일 나무를 한다는 핑계로 부대를 이탈한 뒤 다음날인 13일 오전 7시께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철책을 통과했다. 그는 철책을 뛰어넘거나 철책 아래 땅을 파는 수법을 썼다.
리용수 사건 당시에도 군 경계 문제가 부각됐다. 이용수가 통과한 지점에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이 설치돼있었지만, 이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해당 부대가 비용 문제로 완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자체 제작해 설치했고, 이 때문에 성능이 좋지 않아 이용수의 철책 통과 과정이 녹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철책 하단부 침투방지용 철근도 보강되지 않았으며 소통용 철문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강원 고성군을 지키는 육군 22사단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2012년 노크 귀순과 유사점이 있다. 2012년 9월말에서 10월초 북한군 병사 1명이 이번과 마찬가지로 북한쪽 철책은 물론 우리측 일반전초(GOP) 철책까지 넘어 우리측으로 왔다. 다만 이 병사는 숨지 않고 우리 군 막사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 군은 이번 사건은 노크 귀순과는 다르다고 항변한다. 노크 귀순은 경계작전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명백한 실패 사례인 반면 이번 사건은 GOP 종심 차단 작전을 전개해 월남자를 포위한 후 신변을 확보한 성공 사례라는 게 군의 입장이다. 그간 군사분계선을 넘은 사람들 중에는 군인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유운학 중령이다.
사건 당일 유 중령의 월북을 보고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격노하며 20사단을 비무장지대에서 빼라고 지시했다. 당일 밤 연천에 있던 20사단은 비무장지대 경계작전부대에서 빠졌다. 유 중령의 월북은 사생활, 도박 등 개인적인 문제 때문인 것으로 처리됐다. 군인 월북자 중 동료를 학살하고 넘어간 사례도 있었다. 강원 고성군 까치봉 전방 감시초소(GP)에서 근무하던 조준희 일병이 1984년 6월26일 동료 15명을 죽이고 월북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군인 중에는 미군도 6명 있다. 주한미군은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 이전까지 비무장지대 서부전선 일부 지역의 경계작전을 담당했다. 찰스 로버트 젠킨스 하사는 1965년 1월 음주 상태에서 월북했다. 젠킨스 하사는 북한에서 일본인 소가 히토미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2004년 일본으로 이주한 뒤 2017년 사망했다. 제임스 조지프 드레스녹 일병은 1962년 8월 무단외박 뒤 중대장이 군사재판에 회부하려 하자 홧김에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재철 위원에 따르면 월북 군인 수는 1953년부터 1995년까지 총 453명이었다. 1953년부터 1969년까지 월북한 군인은 391명, 1970년에서 1979년까지 42명, 1980년에서 1989년까지는 17명, 1990년에서 1995년까지는 3명으로 줄었다. 이후에는 1년에 한두명씩 북으로 넘어가는 정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