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與 입법 독주의 명암…'진보 숙원' 이뤘지만 '개혁 후퇴' 비판(종합)
21대 첫 정기국회 마감…與 분위기 고무 속 "역사 이정표"공수처법 개정 등 15대 입법과제 중 12개 완수 성과선거법 이어 야당 비토권 무력화로 공수처법 '말바꾸기'경제·노동 개혁 후퇴…노동계 반발, 당내서도 문제 제기
[서울=뉴시스] 김형섭 기자 = 21대 첫 정기국회가 174석 거대 여당의 '입법독주' 끝에 10일 0시를 기해 막을 내렸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주요 입법과제 중 상당수를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국가정보원법 ▲경찰법 등 권력기관 개혁 3법 중 공수처법과 경찰법 개정안을 처리했으며 국정원법도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만 끝나면 처리 수순을 밟게 됐다. 또 ▲상법 ▲금융그룹감독법 ▲공정거래법 등 공정경제 3법과 ▲고용보험법 ▲ILO 협약 관련 노조법 등 노동관계법,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사회적참사특별법 ▲일하는 국회법 등을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15대 입법과제 중 12개 과제를 달성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자 진보 진영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수처를 비롯한 개혁입법 완수라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역사의 발전', '역사적 이정표' 등으로 자평하며 고무된 분위기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 공수처법 통과 뒤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 설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회창 대통령후보도 약속했는데 번번이 무산되다가 이제야 제도화됐다"며 "공수처가 가동되면, 권력층의 불법적 특권과 불합리한 관행이 사라지고, 공직 사회는 더욱 맑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입법 성과로 문재인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를 입법으로 완성하는 동시에 "총선에서 압승하면 뭐하나" "개혁할 마음이 없냐"며 불만을 쏟아내던 핵심 지지층을 달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브레이크 없는 입법독주로 오히려 개혁입법의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오점도 남겼다. 당장 민주당이 수적 우위로 밀어붙인 공수처법부터 '말바꾸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1년 전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공수처법 제정안을 통과시킬 당시 '야당에 후보 비토권을 부여함으로써 공수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겠다'는 명분을 가장 강조해 내세웠다. 법무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야 추천위원 각 2명씩 총 7명으로 구성되는 공수처장후보추천위가 대통령에게 추천할 2명의 최종 후보 추천 요건을 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최소 1명 이상의 야당 추천위원 찬성이 필요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을 통해 추천위 의결정족수를 6명에서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5명)으로 낮춤으로써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켰다. 민주당은 공수처장후보추천위가 4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묻지마 비토'에 번번이 발목을 잡혀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결과적으로는 지난 연말·연초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며 어렵사리 성안한 검찰 개혁과 선거제 개혁 법안 모두 민주당이 훼손한 셈이다. 무엇보다 공수처장의 중립성을 향한 계속된 시비의 여지를 남기게 됐다는 점이 문제다. 공수처장은 차장 제청과 인사위원 1인 지명권을 갖기 때문에 스스로 당연직 위원장을 겸하는 공수처인사위원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공수처장은 물론 공수처검사 추천까지 '친여(親與) 성향' 시비가 끊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공수처법 상정 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선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얼마나 많은 비리에 연루됐기에 야당이 가진 비토권을 없앴냐. 여당 스스로 비토권을 준다고 하지 않았냐"며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공수처 발족 안한다, 공수처는 야당 탄압처가 아니다라고 했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당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한 말"이라고 꼬집었다. 경제·노동 관련 개혁 입법의 내용을 놓고도 '개혁 후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공정경제 3법으로 명명했던 법안 중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핵심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유지'로 뒤집은 대목이다.
당초 정부안에는 가격 담합, 입찰 담합, 공급 제한, 시장 분할 등 4대 불공정 행위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없애 공정위와 관계없이 검찰도 수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민주당은 막판에 현행 유지로 방향을 틀었다. 전속고발권 폐지시 공정위와 검찰의 이중 수사를 우려하는 재계 반발을 수용했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는 검찰에 권한을 더 주지 않기 위한 고려 때문에 개혁성이 후퇴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전속고발권 폐지가 포함된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통과시킨 뒤 정무위 전체회의에는 현행 제도 유지로 바꿔 통과시킨데 대해 반발한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속고발권 유지로 민주당이 이야기했던 공정경제 3법 취지가 완전히 퇴색했다"며 "재계의 압박에 민주당이 손을 든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초 정부가 낸 상법 개정안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 합산 시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재계가 우려를 제기하자 민주당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외이사에 한해 개별로 단순 3%씩 제한하도록 해 정부 원안보다 수위를 낮췄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본회의 반대 토론에서 "어떻게 정부의 안이 소위 진보정당에서 더 퇴색될 수 있냐"며 "우리 국회는 재벌 앞에 왜 이렇게 무력한가. 국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고민하게 된다"고 따졌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결사의 자유를 확대한 노조법 개정안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한 부분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경우도 경영계 요구를 받아들여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함으로써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주52시간제 취지를 벗어나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등 건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민주노총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에 단서 조항을 달았다는 자체가 독이다.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가 많고 그것을 법으로 정해놨다는 것이 개악"이라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그야말로 재계의 요구를 그대로 다 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본회의 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개혁 입법이 후퇴했다는 당내 비판이 줄을 이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총에서 일부 의원들은 전속고발권 유지 등과 관련해 "겨우 이렇게 하려고 단독 처리 부담을 진 것이냐", "정부안보다 후퇴한 게 개혁입법이 맞느냐"는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한다. 실제 당내에서는 개혁입법이 정부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홍익표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속고발권 유지와 관련해 "당초 정부가 가져온 법안도 '전속고발권만 폐지한다'고 돼 있어서 애매했기 때문에 차제에 경성 (담합)과 연성 (담합) 구분 없이 전체를 폐지하는 문제를 다음번에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민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과드리고 재추진하겠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했었어야 한다"며 "처리 과정에서도 꼼수가 있었다고 하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죄송할 따름이다.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를 재추진해 관철하겠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