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200만원에 낙찰 받은 '노래하는 시절'
지난 3월 코베이 현장 경매에서 안석영의 영화소설 ‘노래하는 시절’을 낙찰받았다. 시작가 30만원에 시작된 경매는 경쟁이 붙어 220만원까지 올라갔다. 경쟁이 없었다면 30만원에도 살 수 있는 책인데 시작가의 7배가 넘는 가격에 사게 된 것이다. 이 책이 그만한 가치를 지녔는지는 모르겠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책들 대부분은 몇 권 남아 있지 않은 유명한 시집이거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급 서적에 한할 테니 말이다. 이 책의 잔존 수량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도의 대우를 받을 만한 책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에서 뜨거운 경쟁이 붙은 것은 아마도 안석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본명이 안석주인 그는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미술가였으며 백조의 동인으로 시도 쓴 적이 있다. 토월회에서는 무대미술에도 손을 댔으며 ‘카츄샤’라는 연극에서는 배우로도 출연했다. 심훈이 무대에선 그의 모습에 반해 안종화에게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무대 위에서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문사에 재직하면서 많은 삽화와 만화를 그리며 연재소설의 삽화 분야를 개척한 인물이자 시사만화가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삽화와 잡지 표지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에 비해 그가 쓴 글을 묶어 출판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것만 따진다면 영화소설 ‘노래하는 시절’은 안석영이 쓰고 표지까지 디자인한 나름 희소성을 지닌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은 나와 인연이 좀 있다. 2017년이었다. 근대서지학회의 오영식 회장이 내게 이 책을 이야기하며 어떤 회원이 가지고 있는 책인데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영화 제목은 알고 있지만 시나리오가 남아 있는지는 몰랐다면서 책을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사본을 줄 테니 해제를 써 보라고 권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받은 사본이 바로 이번에 낙찰받은 책을 복사한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근대서지’를 통해 해제를 쓰기 전까지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노래하는 시절’은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어질 것을 고려해 기획됐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안석영이 재직하던 조선일보에 시나리오가 연재됐으며 영화로 만들어진 후에는 바로 책으로 묶였다. 지방 흥행까지를 고려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제작비가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 이 영화는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한 것이 아닌 포지티브 필름으로 촬영됐다. 포지티브 필름은 슬라이드 필름과 같아서 복사본을 여러 개 만들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는 낡아서 더 이상 상영할 수 없게 될 때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영된 후 폐기됐다. 이 영화의 필름이 발견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안석영이 이 영화에 대해 언급했던 1930년대 중반 무렵 이미 이 영화는 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영화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시나리오에 담겨 있는 내용뿐이다. 안석영은 이후 신문사를 나와 본격적인 영화인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다. 몇 편의 시나리오 작업 후에 ‘심청전’(1937)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1941년에는 ‘지원병’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조선 내 모든 영화회사들이 문을 닫은 후 이를 대신해 만들어졌던 유일한 영화 제작회사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의 연출 책임자로 있었다. 해방 직후 남북이 분단되고 미군정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안석영은 통일된 독립국가 수립을 기원하며 한 편의 시를 썼다. 이 시에 그의 아들 안병원이 곡을 붙였고 이 노래는 휴전선 넘어 북한에까지 널리 불리게 된다. 바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바로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조직된 대한영화사의 책임자로 있던 안석영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폐결핵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지도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와 노래를 통해 이야기하던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안석영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새 봄에는 한반도에 기분 좋은 소식이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