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의 역설②]韓 스타트업이 규제 풀고 이득은 외국 대기업이 가져갔다
애플 워치, 2020년부터 심전도 측정 시작스타트업 '휴이노'의 실증 특례 결과 덕분'자전거 도로 킥보드 주행'도 스타트업 덕세계 1위 미국계 기업, 그 효과 함께 누려업계 "법·제도 바꾼 스타트업에 혜택 줘야"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불합리한 법·제도 손질에 한창이다. 적절한 규제 완화는 경제에 활력을 줘 긍정적이지만, 현행 제도는 스타트업(신생 기업)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대기업과의 경쟁에 내몰고 있다. 스타트업 입장은 아이디어를 내 창출한 새 시장을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에 빼앗길 위기에 놓인 셈이다. 뉴시스는 '규제 완화의 역설' 기획 기사를 통해 이런 상황에 처한 스타트업을 알리고, 현행 제도의 허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애플은 지난 2017년 9월 '애플 워치(Apple Watch) 3'을 공개하면서 심전도 측정 기능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 애플은 "애플 워치를 통해 심장 건강 상태를 더 유의미한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한국의 애플 워치 구매자는 이로부터 3년이나 더 지난 2020년 말이 돼서야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웨어러블(Wearable) 기기로 심전도를 측정해서는 안 된다"던 정부 때문이다. 의료법은 '의료인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 지식을 지원하는 원격 의료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과거 보건복지부는 "웨어러블 기기의 데이터로 내원을 권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유권 해석했다. 이때 한국의 스타트업 '휴이노'가 나섰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측정기인 '메모 워치'(Memo Watch)를 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문을 두드렸다. 메모 워치의 심전도 측정을 통한 부정맥(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증상) 진단 정확도를 99%까지 끌어올린 뒤 "이 제품을 상용화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것이다.
과기부는 2019년 2월 휴이노에 실증 특례를 허용했다. 향후 2년 동안 2000여명에게 메모 워치를 채워 심전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휴이노는 고려대학교 안암 병원과 함께 환자의 심전도를 24시간 모니터링하다가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의사에게 전달하고, 진료 결과에 따라 "병원에 방문하라"고 안내했다. 정부는 휴이노의 실증 특례 과정을 지켜본 뒤 마음을 바꿨다. 메모 워치의 부정맥 진단 정확도가 높고, 착용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심전도 측정을 전격 허용하기로 하고, 휴이노의 실증 특례가 시작된 지 1년여 만인 지난해 3월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기존 유권 해석을 폐지했다. 애플 워치의 심전도 측정 기능이 한국에서 허용된 배경이다. 복지부가 유권 해석을 폐지하자 애플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애플 워치의 심전도 측정 기능도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승인을 받아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시행해 한국에서 판매하는 애플 워치 4·5·6 제품에서 심전도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공유 킥보드도 비슷한 사례다. 한국 스타트업 '매스아시아'가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하고, 경기 화성·세종 등지에서 실증 특례를 해 정부로부터 "자전거 도로에서도 킥보드를 운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 혜택은 한국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세계 1위 미국계 공유 킥보드 기업 '라임'이 함께 누리고 있다. 아직 대기업의 위협(?)을 받고 있지 않은 스타트업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가정용 220V 콘센트에 전기 자동차 충전기를 설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한 '스타코프'의 안태효 대표는 뉴시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시장 초기라 아직 대기업이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뺏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 샌드박스를 이용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규제를 풀고, 그 혜택을 대기업이 함께 누리는 것을 두고 비판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부가 법·제도를 정비한 스타트업에 별도의 혜택을 줄 필요는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