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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근의 반려학개론]가을에 오수개를 떠올린다

등록 2021-11-0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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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가을은 흔히 사람을 센티멘털하게 만든다고 한다. 붉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보면 세월의 흐름을 절로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다 보니 20여 년 전 필자가 동물보호연구회 못잖게 열과 성을 다했던 활동이 떠오른다. 바로 '오수개 복원 사업'이다.

'오수개'는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서 오랜 세월 내려온 ‘충견’ 이야기 주인공이다.

고려 시대 이 마을에 살던 김개인은 개를 한 마리 길렀다. 어느 날 그는 동네 잔치를 다녀오던 중 술에 취해 풀밭에서 잠들고 말았다.

이때 화재가 발생해 그가 누워있는 곳까지 번져왔다. 마침 주인을 마중 나온 개가 이를 보고 김개인을 흔들어 깨웠지만, 그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개는 근처 개천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불 위에서 뒹굴었다. 화재가 김개인에게 오지 못하도록 개는 수차례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덕분에 김개인은 목숨을 건졌으나 개는 심한 화상을 당한 데다 기력까지 쇠잔해 죽고 말았다.

김개인은 잠에서 깨어나서야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게 됐다. 그는 매우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개를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

이 지팡이는 훗날 나무로 자라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고장 이름을 '오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개 오'(獒)와 '나무 수'(樹)를 더한 것이다.

동명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영국 작가 매리 루이스 드 라 라메의 동화 '플란다스의 개', 일본 도쿄 시부야역에서 10년 동안 주인을 기다린 충견 '하치 이야기' 못잖게 감동을 주는 전설이다.

오수개 복원은 1990년대 오수청년회의소와 민속 전래 오수 의견공원추진위원회 등이 임실군 예산 1000여만 원을 확보한 데서 시작했다.

당시 방송, 신문 등에서 동물보호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필자가 인근 지역(전북 남원시) 출신임을 알게 된 지역 인사들이 필자에게 오수개 복원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흔쾌히 참여했다.

사실 필자 본가는 남원 시내보다 오수면에 더 가까워 오수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고 자랐다. 어쩌면 필자가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고, 수의사의 길을 걸은 것도 그 시절 오수개가 준 감동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 예산은 복원은커녕 기초 연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필자를 비롯해 한홍율 서울대 수의대 교수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한 오수개복원위원들 모두 오수개 복원에 동참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전설 속 고려 시대의 개를 복원하는 것이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일본을 방문해 '아키다' '시바' 등 일본 전통 견종을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목포대 박물관을 방문해 호남 일대에서 살았던 개들의 두개골 등을 살피는 등 형태학적인 접근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시대 삽살개 두개골 지수를 조사해 멸종한 개들의 유사성을 살폈다.

연구를 통해 오수개는 몸집이 크고, 털은 풍성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중국의 장모 초대형견인 티베탄 마스티프보다 털은 짧고(중장모), 몸집은 작다(중대형견)고 봤다,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가 추정한 전설 속 오수개와 근접한 품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필자가 연구에 참여하면서 내건 조건은 "'복원'이지만, 오수개와 최대한 비슷할 뿐이지 새로운 개를 '육종'하는 것이다. 이를 마치 원래 있었던 오수개를 발굴한 것처럼 천연기념물로 지정받는 등 과욕을 부리지 말자"였다.

이는 끝내 지켜졌다. 모든 소임을 마친 뒤, 필자는 명예롭게 복원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복원 성공 당시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임실군과 지역 주민은 매년 '오수 의견 문화제'를 개최해 오수개를 기리고 있다.

반려동물 붐을 타고, 수목장도 가능한 ‘반려동물 테마공원’을 추진해 오수개를 지역 경제 회복의 견인차로 삼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1000년이나 된 오수개 전설이 잊히지 않은 채 지금까지 면면히 전해진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윤신근
수의사·동물학박사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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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수의사 윤신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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