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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헤밍웨이가 사랑한 와인

등록 2021-11-13 06:00:00   최종수정 2021-11-13 08: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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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마고. (사진=뉴시스DB)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헤밍웨이는 4번 결혼했다. 장남 잭은 첫번째 부인인 해들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헤밍웨이와 해들리는 잭이 5살 때에 이혼했다. 엄마가 키웠지만 잭은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았다. 두 부자는 플로리다나 쿠바에서 같이 지내며 자주 낚시나 사냥을 다녔고, 함께 와인도 마셨다.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는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지방의 1등급 그랑 크리 와인이다. 보르도의 5대 레드 와인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하는 이 와인은 헤밍웨이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헤밍웨이는 잭이 낳은 둘째 손녀를 특히 귀여워해 쿠바에 데리고 가거나 아이다호주의 케첨에 있는 농장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다. 그 손녀가 바로 모델과 배우로 유명했던 마고 헤밍웨이(Margaux Hemingway)다.

헤밍웨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샤토 마고에서 따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은 잭이 부인과 함께 샤토 마고를 마신 날 그녀를 잉태해 처음에는 ‘Margot’로 지었다. ‘Margaux’는 그녀가 성인이 된 후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서 직접 개명한 것이다.

이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샤토 마고를 향한 헤밍웨이의 애정은 각별했다. “샤토 마고와 샤토 오브리옹을 온전히 즐기는 기쁨(무기여 잘 있거라)” “나는 친구 삼아 한 병의 와인을 마셨다. 그것은 샤토 마고였다(태양은 다시 떠 오른다)”와 같이 그의 작품에도 직접 묘사돼 있다.

그의 작품에는 곳곳에 와인에 관한 언급이 눈에 뛴다. 와인을 “세상에서 가장 문명화된 물건”이라고도 했다.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에서는 “즐기기 위해 구매할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인”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와인은 모든 나쁜 것을 잊게 한다”는 말은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온다.          

헤밍웨이는 와인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마셨다. 위스키나 데킬라와 같은 증류주도 좋아했고 맥주를 비롯해 리큐르주인 압생트와 마티니, 다이키리, 모히토, 블러드 메리와 같은 칵테일도 좋아했다. 파리, 플로리다, 쿠바, 페루, 이탈리아, 스페인에는 그가 단골로 다녔던 바들이 아직까지 건재한다.

아들들이 10대가 되자마자 바에 처음 데려가 술을 가르쳐준 사람도 헤밍웨이였다. 그는 플로리다 키 웨스트의 바 ‘슬로피 조즈(Sloppy Joe’s)’에서 럼주를 섞은 칵테일인 ‘다이키리(Daiquiri)’를 처음 잭에게 시켜주었다. 금주법 시대부터 이 바의 단골이었던 헤밍웨이는 1933년 금주령이 해제되자 이 바의 이름을 새로 지어준 인연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만날 때면 늘 와인이나 칵테일 등의 술을 함께 마셨다. 1955년 군에서 제대한 잭이 진로를 상의하기 위해 쿠바에 왔을 때, 헤밍웨이는 잭에게 잔을 건네며 자살한 할아버지의 전철을 절대로 밟지 말도록 당부한 일이 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1961년 7월2일 헤밍웨이는 케첨에 있는 자택에서 아내가 지하실에 숨겨둔 엽총을 찾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62세 생일이 3주도 채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 그의 35주년 기일인 1996년에는 손녀인 마고 헤밍웨이가 약물중독으로 자살한다. 아버지를 비롯 자신과 3명의 형제자매까지 헤밍웨이 집안에서 4대에 걸쳐 일어난 똑같은 비극이었다. 아들은 약속을 지켰다.  

헤밍웨이가 쿠바에 있을 때 현지인들은 그를 ‘파파(Papa)’라고 불렀다. 바텐더도 그렇게 불렀다. 아바나에서는 ‘라 플로리디타(La Floridita)’가 단골 바였다. 여기서 ‘쿠바의 칵테일 킹’으로 불리던 ‘다이키리’를 우연히 마시고는 레시피를 약간 바꾸어 다시 주문했다. ‘헤밍웨이 스페셜’로도 불리는 ‘파파 도블레’ 칵테일의 탄생이다.

아바나의 ‘라 보데귀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바도 헤밍웨이가 자주 가던 곳이다. 모히토가 최초로 탄생한 곳이다. 여기서는 그도 모히토를 주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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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변연배 와인칼럼니스트
페루에 있을 때는 칸트리 클럽에 있는 리마 호텔의 바 ‘잉글레스(Bar Ingles)’에 자주 갔다. 호텔 측은 그에게 하루 60잔이 넘는 여러 종류의 술을 제공했는데 청구는 일부만 했다.

1940년대 말 이탈리아에 갔을 때는 베니스 ‘해리스 바(Harry’s Bar)‘에 아예 고정석을 두고 바 주인과 함께 마셨다. 1950년에 발표한 ’강을 넘어 숲속으로(Over the River and Into the Trees)‘에도 이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리에 체류할 때 ‘타티(Tatie)’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던 바는 단연 리츠 호텔의 바이다. 1944년 이 바를 독일군으로부터 직접 해방시키고는 드라이 마티니 53잔을 외상으로 마셨다.

파리의 루테시아(Lutetia) 호텔 바도 자주 다녔다. 1922년 친구였던 제임스 조이스가 이 바에서 ‘율리시즈’를 쓸 때는 가끔씩 교정을 봐 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카페 라클로저리 데릴라’ ‘카페 레 되 마고’ ‘딩고 바’ ‘카페 드 플로레’ ‘해리스 뉴욕 바’ 등을 자주 방문했다.

싱가폴에 갔을 때에는 래플즈 호텔의 ‘더 바’를 찾았다. 말년의 미국에서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케첨에 있는 ‘카지노 바’와 ‘올림픽 바’를 드나들었다. 

그는 술이 세서 한꺼번에 여러가지 술을 섞어 너무 많이 마시는 문제가 있었다. 한자리에서 각종 술 88잔을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술과 일에 대한 철학이 분명했다. 1935년 러시아의 비평가인 이반 카스킨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나서 다음날 또 일을 해야 한다면 위스키 말고 기분을 전환시킬 것이 또 뭐가 있는가? 예외가 있다면 오직 글을 쓸 때와 싸울 때 뿐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이런 말도 남겼다.

“인생에 있어 나의 유일한 후회(my only regret)는 좀 더 많은 와인을 마시지 못한 것이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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