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원자재 대란①]커지는 '차이나 리스크'…제2의 요소수 1000여개
"미중 패권전쟁에 새우등"…中의존도 80% 이상 품목 1850개마그네슘잉곳·알루미늄 '경보음'…"독특한 분업구조로 피해 커"
지난해 2월 '전선뭉치'에 불과한 '와이어링하네스'가 국내 자동차 생산라인을 멈춰세우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차이나 공급망리스크'의 시작이었다. 와이어링하네스는 자동차의 전자장치들을 연결하는 전선뭉치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 국내 업체들은 이 부품의 생산을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내 공장 가동 중단과 춘절 연휴가 겹치며 와이어링하네스 품귀 현상이 발생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 르노삼성, 쌍용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국내 공장이 연이어 멈춰섰다. 이로 인해 자동차 부품업체는 물론 철강과 화학 등 전후방산업도 피해를 입어야 했다. 국내 산업계는 와이어링 하네스 사태를 계기로 공급망을 전면 점검하고 주요 품목을 비축하는 등 공급망 위기상황에 대비해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반도체부품 품귀로 생산차질을 겪는 등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업계에 따르면 요소수에 이어 차량 경량화에 쓰이는 마그네슘잉곳, 수소저장체와 혼소발전에 쓰이는 암모니아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이 모두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내 산업의 중국 공급망 의존도가 높아 2년 전 일본의 반도체분야 수출 규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파장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한국이 수입한 품목 1만2586개 중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80% 이상인 물품은 3941개(31.3%)에 이른다. 이중 중국 수입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은 1850개로 미국(503개), 일본(438개)에 비해 확연히 많았다. 요소수 대란을 일으킨 산업용 요소의 경우 국내에서는 2011년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생산이 중단됐고, 올해 1~9월 기준 97.6%를 중국에 의존했다. 차량 경량화에 쓰이는 마그네슘(마그네슘잉곳)은 100%, 의료기기와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산화텅스텐은 94.7%, 이차전지 핵심소재인 수산화리튬은 83.5%, 전자제품 경량화에 쓰이는 네오디뮴 영구자석은 86.2%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그네슘의 경우 이미 가격이 급등, 국내 산업계의 불안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전력난과 탄소배출 규제로 생산을 줄이며 마그네슘 가격은 지난 9월 t당 1만9000위안에서 9월 한때 7만위안까지 가격이 올랐다. 알루미늄 역시 세계 최대 생산지인 중국이 생산 통제에 들어가며 지난달 t당 3000달러를 기록하는 등 13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산업연구원 역시 최근 '한국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 및 파급경로 분석' 보고서에서 "대(對)중국 수입품 중 전략적 취약성이 관측돼 관심이 필요한 품목이 1088개"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중간재 품목을 중심으로 형성된 양국의 독특한 산업 분업 구조 때문에 미국·일본 같은 다른 나라에 비해 '차이나 리스크'가 더 크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공급망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미중 공급망 패권 경쟁이 벌어진데다 국제적으로 자원의 무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주도권을 놓고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요소수 사태의 배경에도 미중 갈등이 작용했다. 중국은 호주가 미국의 편에 서서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하자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했고, 이에 따라 석탄공급량이 부족해지고 가격도 크게 올랐다. 자국 물량이 부족해지며 중국 정부는 요소를 수출 제한품목으로 묶었고, 이는 한국의 요소수 대란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일본·호주·인도 등과 함께 대중(對中)안전보장협의체 '쿼드'(Quad)를, 영국·호주와 함께 안보동맹 오커스(AUKUS)를 창립하는 등 동맹을 통한 중국 견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쿼드와 오커스는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첩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와 함께 3대 대중견제 노선으로 꼽힌다. 미국은 우리나라에도 쿼드와 파이브아이즈 등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견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중국이 요소수 수출제한을 통해 한국에 경고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중국의 관영매체는 "이번 요소수 공급 위기로 한국·미국 등은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세계는 최근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의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3시간30분가량 진행된 두 정상의 화상회의서 공급망과 관련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신장·티베트·홍콩 등에 대한 인권문제, 대만이슈 등을 언급하며 첨예한 기싸움이 이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갈등으로 우리 산업이 '고래등에 새우등이 터지는 상황'에 처했다"며 "공급망 불안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취약물자 리스트를 사전에 파악하고, 반도체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미국처럼 주요 소재·부품 생산을 내재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한국과 산업구조가 비슷하지만 요소수 품귀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전략물자라고 판단해 사전에 대비하고 요소의 주원료인 암모니아를 77% 자국 내에서 생산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요소수 사태를 사전에 파악해 선제적으로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중국이 의도하고 요소수로 한국에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고 해도 이번 사태를 보며 자원을 무기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