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엄숙자 외 122명, 피고는 대한민국[④기지촌여성, 그들은 지금…]
2014년 6월25일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1심 '격리 수용' 치료 법적 근거없어 위법2심 국가의 성매매 정당화·조장행위 인정양 측 상고, 대법원 판단 기다리는 등 8년째 소송 진행 중…12명은 세상 떠나서울고법 "적극적·능동적으로 외국군 상대 성매매를 정당화하거나 조장했다" 판단...국가 관여 드러난 첫 시도
[수원=뉴시스]박상욱 이병희 기자 = ①'양공주, 양색시'...고독 택한 70대 노인의 쓸쓸한 죽음 ②'나는 위안부입니다...'같이 도망갈래? 따라 들어선 기지촌 ③전국 최대 규모 기지촌 경기도…사회적 무관심, 생활고 등 이중고 ④원고 엄숙자 외 122명, 피고 대한민국 ⑤현대사의 비극이자 희생양…국가와 경기도 공식 사과 필요 ◇기지촌 여성,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꼭 내 잘못만은 아닌데, 나라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나만 손가락질받고 힘들게 살았어요.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그렇게 평생 살았는데 너무 억울하잖아요. 소송이라도 해서 따져 보려고요." 원고 엄숙자 외 122명, 피고 대한민국. 기지촌 여성 122명은 지난 2014년 6월25일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존재를 인정받고 국가에 책임을 묻기 위한 선택이었다. 12차례의 심리 끝에 2017년1월20일 1심 재판부는 당시 소송에 참여한 122명 가운데 57명을 피해자로 인정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가 기지촌 성매매를 조장·권유했다는 점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1977년 8월19일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 시행 이전에 이뤄진 성병 감염인에 대한 '격리 수용' 치료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위법하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1심보다 국가의 책임을 확대했다. 2018년 2월8일 항소심 법원은 원고 117명 가운데 74명에게 700만 원씩, 43명에게는 3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1심과 달리 국가의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성매매 정당화·조장행위를 인정하고, '진단 없이' 낙검자수용소 등에 강제 격리수용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양 측은 상고했고,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 기지촌 여성 일부가 세상을 떠났다. 이들을 제외한 기지촌 여성 111명의 소송은 8년째 '현재 진행형'이다. ◇기지촌 내 성매매 국가가 조장, 정당화 "공문 내용 등에 비춰 보면 기지촌 위안부들에게 외국군을 상대로 한 '친절한 서비스', 즉 외국군이 안심하고 기지촌 위안부들과 기분 좋게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외국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를 요구하고, 이를 통해 외국군들의 '사기를 진작·앙양'함으로써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군사동맹 유지에 기여하는 한편, 외화 획득과 같은 경제적 목적에 위안부들을 동원하겠다는 의도나 목적으로 기지촌을 운영·관리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서울고등법원 제22민사부 2018.2.8) 이 소송에서 재판부는 국가가 단순히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묵인하거나 최소한의 관리를 한 것이 아니라 애국교육·성병치료 등을 통해 적극적·능동적으로 외국군 상대 성매매를 정당화하거나 조장했다고 판단했다. 외국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성매매 활성화를 통해 외화를 획득한다는 의도로 기지촌을 운영·관리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외국군 상대 성매매에 있어서의 협조 당부', '주한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접객업소의 서비스 개선' 등 보건복지부와 경기도, 용산경찰서장, 춘천시 등이 작성한 공문을 주된 근거로 봤다.
◇'인간 존엄성' 침해 "피고는 원고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나아가 성(性)으로 표상되는 원고들의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어느 누구도, 특히 국가는 한 인간의 인격이나 인간적 존엄성에 관한 본질을 침해하고, 이를 수단으로 삼아 국가적 목적의 달성을 꾀해서는 안 된다."(서울고등법원 제22민사부 2018.2.8) 재판부는 국가의 성매매 조장·정당화 행위가 미군 위안부의 인격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강제 격리수용에 대해선 "위안부의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등한시한 채 성병 근절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제적으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곤궁하던 시기였지만, 국가가 기지촌에 성매매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든 것을 기화로 위안부의 성(性)을 상품화해 외화 획득을 도모한다는 것은 명백히 위법한 것이므로,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인권존중의무를 위배하고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자발적으로 성매매 행위를 한 이상, 원고들은 피고의 특정지역 설치 행위에 따른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어 "설령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시작했더라도 피고가 이를 기화로 원고들의 성(性) 내지 인간적 존엄성을 군사동맹의 공고화 또는 외화 획득의 수단으로 삼은 이상, 원고들은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단했다.
◇국가 관여 드러난 첫 시도 이 판결은 기지촌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관여를 드러낸 '첫 시도'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된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증언했고, 이들의 삶은 처음으로 법의 영역으로 소환됐다. 개별 피해 진술이 모여 당시 모순된 사회 구조를 밝혀냈고, 법원은 국가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핵심은 피고가 적극적·능동적으로 성매매 행위를 조장·정당화해 원고의 인격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국가의 책임을 규명했다. 소송에 참여했던 법무법인 율립 하주희 변호사는 "기지촌 여성들의 국가배상 소송은 비극적인 과거를 드러냈다는 차원에서 판결 그 자체로 우리사회가 반드시 공유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며, 삶의 흔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하 변호사는 "기지촌 성매매에 국가의 개입·관리에 대한 증거가 있었고, 충분히 불법행위가 된다는 확신으로 재판에 임했다. 국가가 저질렀던 과거를 사죄하기 위해서라도 피해여성들이 생전에 충분한 피해회복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