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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와인, 사람을 죽이다?

등록 2022-06-1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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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수입 와인 가격이 3년 전보다 최대 35.5% 저렴해진 것으로 알려진 2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점원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2021.08.24.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흔히 볼 수 있는 와인 범죄로는 ‘와인 절도’가 있다. 절도는 4000년 전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처벌 규정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범죄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절도 범죄를 저지르면 훔친 물품 가액의 여러 배로 배상케 하는 처벌이 자주 등장하는데, 성서(출애굽기)에는 4~5배, 고구려와 부여에서는 12배를 배상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고대 로마, 고려와 조선에서는 장물의 액수가 높으면 사형에 처했다.

와인의 역사에도 절도나 약탈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2000년 전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던 로마인들은 1인당 하루 평균 0.5리터의 와인을 소비할 정도로 와인은 생활필수품이었다. 당연히 다른 식료품처럼 생계형으로 와인을 훔치는 사람도 생겼다. 하지만 와인의 생산과 공급을 국가가 통제하고 있던 탓에 대규모 절도 사건은 드물었다.

중세에는 해적들의 약탈이 잦았다. 1587년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저지른 카디즈 습격사건은 가장 유명한 와인 약탈 사건으로 불린다. 나중에 영국의 해군제독이 된 그는 100만병 정도의 스페인 세리주를 약탈했다. 영어로 세리주를 뜻하는 ‘sack’이라는 단어는 이때 생겼다.

반면 대형 절도사건은 대부분은 21세기에 일어났다.

2006년 스웨덴의 한 식당에서 도둑들이 경보 시스템을 해제하고 1900년대~2000년대산 샤토 뒤켐 화이트 와인 600병을 훔쳐가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는 시가로 6억원에 달했다. 2012년에는 캘리포니아의 개인 셀라(와인 저장고)에서 샤토 마고 등 한 병에 400만원 정도인 보르도 특급 와인 1000병을 2달러짜리 싸구려 와인으로 교체하는 수법으로 4년 동안 40억원에 달하는 와인을 훔친 사건이 일어났다.

2017년에는 파리 지하 공동묘지에서 셀라로 터널을 판 후 4억원 상당의 와인을 훔친 일도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한 밤중에 마시던 와인이 떨어지자 탱크를 몰고가서 문 닫은 와인가게를 박살내고 와인을 가져간 일도 있다. 그 심정만 이해한다.

2018년 일어난 사건은 금융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골드만 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회장의 비서가 회장 자택에 있는 개인 셀라에서 2년 동안 로마네 콩티 등 14억원 정도의 와인 500병을 훔친 후 체포됐는데, 그는 감옥에 가는 대신 뉴욕의 카알라일 호텔 33층에서 뛰어내렸다.

가끔씩 포도밭의 포도가 통째로 도난 당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와인통에서 와인을 채취하는 긴 도구도 ‘와인 도둑’(Wine Thief)이라 부른다.

특정 시대나 특정 국가 혹은 특정 문화에 따라 와인을 마시는 것 자체가 범죄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1919~1933년 금주법 기간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미사용을 제외한 와인을 양조하거나 마시는 것도 범죄였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와인을 유통할 수는 있지만 마시는 것은 불법이다.

와인이 살인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와인은 범죄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살인과 같은 범죄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픽처’에서는 주인공이 뉴질랜드 산 ‘클라우디베이’ 화이트 와인 병으로 상대를 내리쳐 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 때문에 와인 브랜드가 유명해졌지만 와인병은 단지 우연의 장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와인을 이용한 살인은 대부분 독살이다. 이는 역사도 깊다. 살인자들이 독살을 선호한 이유는 비교적 쉽고 은밀하게 행할 수 있고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살을 겁쟁이의 살인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독살에 가장 흔하게 사용된 독극물은 비소였다. 자연 상태에서 채취할 수 있는 비소는 무색무취에 살짝 단맛이 나 음식물이나 음료에 타기가 용이하고 눈치 채기도 힘들다. 한 번에 치사량을 흡입하면 중추신경이 마비돼 1~2시간 안에 사망한다. 우리나라 사극에 나오는 사약(賜藥)도 주로 비상이라 불리는 비소 성분으로 제조했는데 이를 마시고 바로 피를 토하면서 죽는 장면은 과장된 것이다.

서양에서는 특히 중세에 와인에 비소를 탄 독살이 유행했는데, 흡입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훗날 르네상스 시대 ‘팜므 파탈의 여왕’으로 불린 16세기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딸 루크레치아 보르자도 이 방식으로 연인들을 살해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 조선의 왕 27명 중 8명도 비소에 의한 독살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사건의 성격은 사람의 의도가 결정한다. 독극물도 미량을 사용하면 약이 될 수 있고 달콤한 설탕도 지나치게 섭취하면 죽음에 이른다. 와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와인은 옳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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