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책방 노마만리와 '불멸의 기수'
[서울=뉴시스] 지난 5월 말 천안 외곽에 '노마만리'라는 이름의 책방을 냈다. 지난해 12월 매매 계약을 체결한 후 6개월 만에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책방은 낚시터로 유명한 마정저수지를 마주한, 경치가 뛰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총 면적 150평 3층 건물의 1층에 책방, 2층에 전시실, 3층에 영화도서관을 꾸몄다. 노마만리는 '둔한 말로 만리를 간다'는 뜻으로, 소설가 김사량이 해방 후 쓴 항전기행문의 제목이다. 책방 이름을 그렇게 정한 것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열심히 책방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였다. 책방을 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테리어 업자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면서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업을 준비해야 했다. 인테리어 업자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간판도 달지 못한 상황인지라 급하게 간판 업자를 찾아 간판을 달고, 온수기도 설치해 방치돼 있던 식기세척기도 연결했다. 예정했던 '영화운동의 최전선' 전시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같은 이름의 자료집을 내는데 큰 힘을 써 준 김명우 선생에게 손을 내밀어 어렵사리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책방이 천안 외곽에 위치한 곳이라 지난달 27일 저녁에 있었던 개업식에는 많은 분들을 초대하지 못했다. 연구소의 고문을 맡은 영화평론가 김종원 선생님과 영화제작자 이진숙 선생님을 비롯해 '영화운동의 최전선' 발간에 도움을 준 이효인, 이정하, 변재란, 이수정 선생님을 초대했고 그 밖에 개업을 축하해 주러 오신 몇몇의 지인들이 참석했다. 그렇게 몇몇 분들만 모셔 개업식을 치르다 보니 개업 이후 책방 개업을 축하하는 지인들의 방문이 거의 매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일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김홍준 원장을 비롯한 직원분들이 책방을 찾았다. 월 1회 한국영상자료원 영화도서관 직원들의 책방 방문 기회를 영화도서관을 준비하고 있는 천안의 책방 노마만리로 정한 것이다. 2층에 마련된 '영화운동의 최전선' 전시를 둘러본 김 원장은 본인이 오랫동안 소장하던 귀중한 책 몇 권을 책방에 기증했다. 4·19혁명 직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출간된 책들로, 김 원장이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폐기도서로 분류된 책을 가져가 근 50년간 고이 보관하고 있던 것들이다. 이 책들은 영화도서관의 장서에 귀중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다음날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역임한 적이 있는 이효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 원장이 기증한 책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책인지 궁금해 하던 이 선생님께 책을 보여드렸더니 깜짝 놀라는 게 아닌가. 4월민주혁명순국학생기념시집 '불멸의 기수'의 책 기증자가 1963년 당시 경기고 1학년 윤형주로 기록되었는데, 그가 바로 송창식과 함께 트윈폴리오라는 팀으로 활약했던 가수 윤형주인 것 같다는 것이다. 바로 인터넷을 통해 가수 윤형주의 학력과 나이를 확인해봤다. 1963년에 경기고에 입학한 것이 맞았다. 이 책이 가수 윤형주가 고교 1학년 때 기증한 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김홍준 원장이 기증한 책들 중 하나가 뜻깊은 사연을 지니고 있단 것이 발견됐다. 이 선생님은 본인이 가수 윤형주가 기증한 걸 알아냈다는 점을 꼭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날 나는 페이스북에 "고교 1학년생 윤형주가 왜 이 책을 기증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책은 윤형주에서 경기고 도서관으로 갔다가 폐기될 위기에서 도서반원 김홍준에 의해 구출돼 마지막에는 책방 노마만리에 보관되었습니다. 영화처럼 굴곡진 운명으로 결국은 해피엔딩이네요"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렸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를 품게 되면서 그 생명을 연장했다. 이것이야말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지닌 힘이 아닐까. ▲한상언 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