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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와인의 물리학

등록 2022-07-09 06:00:00   최종수정 2022-07-09 10: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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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에서 관계자가 시음 잔에 제품을 따르고 있다. 2022.06.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원자의 평균 크기는 10-10(100억분의 1)m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양자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은 1959년 사람이 원자 규모의 물질을 통제할 수 있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1981년 IBM이 전자 현미경을 통해 원자를 재배열하면서 인류는 원자 크기의 물질을 다룰 수 있게 된다. 파인만은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말했다.

파인만은 와인과 드럼 연주를 좋아했다. 그는 1963년에 펴낸 책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우주의 섭리를 한잔의 와인에 비유했다.

“와인이 담겨있는 잔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정말로 모든 우주가 함축되어 있다. 출렁이는 와인은 바람과 기온에 따라 증발하고 유리잔은 빛을 반사시키며, 우리의 상상력은 거기에 또 다른 원자들을 추가시킨다. 이런 것들은 모두 물리적인 요소들이다. …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성이 와인 한잔을 놓고 물리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심리학 등을 떠올린다 해도 자연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와인의 존재 이유를 기억하면서 와인 잔과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라. 두 눈을 부릅뜨고 와인 잔을 뚫어지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 얼마나 향기로운 와인인가? 마시고 다 잊어버려라!”

세상 모든 것은 물리법칙을 따른다. 와인이 양조되고 우리가 이를 잔에 따라 마시는 과정도 예외가 아니다. 엄격히 따져 와인의 발효과정은 화학의 법칙을 따르지만 당분이 효모를 통해 알코올을 함유한 와인으로 변하는 과정은 물리학의 ‘열역학 법칙’과 ‘양자역학’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와인이나 이를 마시는 우리의 인체 구성성분도 원자 단위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산소, 수소, 탄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애초 우주의 모든 별들과 지구도 동일한 원소들로 이루어졌다. 수천만 픽셀의 사진처럼 미세 단위로 확대하면 인체에 흡수된 와인과 인체의 원래 구성 성분은 구분이 희미해진다. 우리가 와인이고 와인이 우리다.

와인을 따르고 나면 병의 주둥이에서 꼭 한 두 방울의 와인이 떨어진다. 이것은 곡률이 있는 고체의 표면 위를 액체가 흐를 때, 액체 위 아래로 압력 차이가 발생하여 액체가 곡면을 따라 흐르려는 현상이다. 이른바 ‘코안다 효과’(Coanda Effect)다. 표면장력도 함께 작용한다. 얼마 전 병 주둥이에 홈을 파서 이를 해결한 와인 병이 나왔다. 샴페인을 딸 때 소리가 나면서 거품이 터지는 현상은 “온도가 일정할 때, 기체가 액체에 녹는 용해도는 기체의 부분 압력에 비례한다”는 ‘헨리의 법칙’(Henry’s Law)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병뚜껑을 따는 순간, 발효돼 병 속에 있던 이산화탄소의 높은 압력이 낮아지면서 밖으로 빠져나오고 소리와 거품을 만든다.

와인 잔을 돌리면(swirling) 와인 속 수분이 잔 표면에 물방울 형태로 맺혀 눈물을 흘리듯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인의 눈물’(Tears of wine) 혹은 ‘와인의 다리’(Legs of wine) 로 불리는 현상인데, 이 역시 물리학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이를 ‘마랑고니 효과’(Marangoni Effect)라 하는데, 이는 두 용액 간 표면장력의 차이에 따라 발생한다.

와인 잔을 돌리는 이유는 와인에 산소를 섞어 향을 확산하려는데 있다. 물리학적으로도 뒷받침이 된다. 유체역학 중 와인 관련 부분만 세분화해 ‘와인역학’(Eonodynamics)이라 부른다. 와인 잔을 돌릴 때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소는 잔의 직경, 잔에 담긴 와인의 양, 손의 회전 반경이다. 잔은 클수록 좋고, 와인의 양은 잔의 3분의 1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돌릴 때는 시계 반대 방향이 좋은데, 이는 와인이 튀더라도 원심력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은 ‘상대성 이론’이다. 와인 병을 열고, 와인을 잔에 따르고, 때론 열정이 넘쳐 와인 잔을 깨뜨리는 것은 자연은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한 것이다.

물리학은 우리가 와인을 선택할 때도 끼어든다. 우리가 와인 리스트에서 특정한 와인을 고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일까? 물리학의 ‘결정론’(determinism)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선택과 사건은 이미 정해진 대로 일어난다. 이에 따라 결정론은 자유의지를 부정하기도 한다. 자유의지 문제는 물리학을 넘어 철학적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다고 보았지만 아직도 답이 명확하지가 않다. 답을 모르는 것은 그대로 ‘문제’가 된다.

인간은 문제를 만들고 와인은 문제를 해결한다. 와인이 문제를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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