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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소설가 장강명 "현실적인 경찰 이야기...800 페이지 읽힐까 걱정이네요"

등록 2022-08-20 07:00:00   최종수정 2022-08-29 09: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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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장편소설 '재수사' 1, 2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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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재수사' 작가 장강명이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작 '재수사'는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22년 전 발생한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추리소설이며, 오는 22일 출간 예정이다. 2022.08.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책이 800페이지나 되니까 쓰면서도 걱정이 되기는 했어요."

소설가 장강명(47)이 6년 만에 새 장편소설 '재수사'을 펴냈다.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 2권은 원고지 매수로도 3000매에 이른다. "하마터면 한 권으로 묶여 '벽돌책'이 될 뻔하기도 했다."

그는 3년에 걸친 집필 과정 중에도 길어지는 소설에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그간 써온 작품 중에 제일 긴 작품이 1700매 정도('우리의 소원은 전쟁')였다.

"전업 소설가인 제 주요 수입은 사실 판권 계약이거든요. 이렇게 긴 소설을 영상화하는데 관심 있는 제작사가 있을까 싶기도 했죠."

길어지는 소설에 슬럼프도 있었다. "속도감이 나지 않고 이런 장편소설을 쓸 재능이 없는 건가 느껴지기도 했죠."

그러나 장 작가는 "이야기를 쓰면서 일정한 밀도와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어느 순간 판권이나 판매량은 신경 쓰지 않게 됐다"며 "이상한 용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우려와 달리 현재 '재수사'는 출간을 앞두고 제작사와 영상화 작업도 논의 중이다.

◆2018년부터 경찰 만나 취재…"현실적인 경찰 소설 쓰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치안이 아주 좋고, 살인사건이 잘 일어나지 않는 나라다. 미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 캐나다보다도 살인사건 발생률이 낮다. (…) 반대로 살인사건 검거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0년대 들어 살인사건 범인 검거율은 95퍼센트 이상이다."('재수사' 1권 52쪽)

장강명 작가는 '재수사'를 쓰면서 현실적인 경찰 소설을 목표로 했다. 한국 사회의 경찰들의 수사 방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그간 '알바생 자르기' 등을 통해 보여준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도 잊지 않았다. 2000년 신촌에서 여대생을 살해한 살인자의 수기와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의 수사를 번갈아 전개하며 추리소설이자 사회소설을 완성했다.

수사를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취재에도 열을 올렸다. 2018년부터 직접 경찰서를 찾아 형사를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2013년까지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그는 후배 기자의 도움으로 경찰을 소개 받아 이야기를 들었다.

이 때문에 소설 속 강력범죄수사대의 수사 방식은 그간 수사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던 '특수수사기법'과는 거리가 멀다. DNA 채취를 위해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범인을 검거하려다가 넘어져 발목을 삐기도 한다.

"이번에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제가 경찰 출입 기자 생활을 했지만 형사분들이 수사를 어떻게 하는지 정말 몰랐다는 거예요. 형사분들이 하는 수사가 정말 직접 발로 뛰고 하나하나 수고스럽지 않은 게 없더라고요. 취재를 마치고 경찰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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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재수사' 작가 장강명이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신작 '재수사'는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22년 전 발생한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추리소설이며, 오는 22일 출간 예정이다. 2022.08.20. [email protected]


◆살인자의 수기, 미래 사회에 대한 장강명의 상상이자 제안

강력범죄수사대의 이야기를 통해 수사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뤘다면 살인자의 수기를 통해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22년간 검거되지 않은 살인범이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칼로 가슴을 두 번 찔러 죽였다"며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는 데에서 시작해서 신계몽주의 사상까지 나아가는 과정에는 작가의 미래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사실 살인자의 수기에 제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말도 안되는 부분도 있어요. 어떤 부분은 저조차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런데 저는 미래 사회를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살인자라는 현대사회에서 이미 선을 넘어버린 인물을 통해서 과감하게 이것저것 제시해본 거죠."

"나는 도덕적 책임에 원근법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재수사' 1권 363쪽)

"신계몽주의 사회에서 모멸은 중범죄가 된다."('재수사' 2권 59쪽)

장강명은 "희망이 없는 현대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뤄지는 "감수성에 기초한 논의"에 그는 회의적이다. "사회를 바뀌기 위해서는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고 기준이 필요해요. 감수성은 너무 주관적인 기준이잖아요."

그의 고민은 데뷔작 '표백'과도 이어진다. '표백'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을 생각하며 썼다면 이번 작품은 '죄와 벌'을 의식하며 썼다. 11년 전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던"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미래 사회에 대해서 조금은 상상할 수 있게 됐다"며 변화된 자신을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저에게도 도전이었어요. 이런 묵직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스스로 시험해본 거죠."

장강명은 한국 사회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재수사'와 같은 긴 장편소설과 '알바생 자르기'와 같이 노동을 다룬 단편 소설에 앞으로 집중할 예정이다. 노동문학 연작을 다룬 '산자들' 2권을 쓸 예정이며 '재수사'에서 이어지는 고민을 담은 장편소설도 구상 중이다.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만 그 신이 사악하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간 다양한 작품을 출간했지만, 장강명은 "나의 전성기도 아직 오지 않았다"며 "소설은 인간과의 경험이 쌓일수록 잘 쓰게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소설가들의 전성기가 20대는 아니었잖아요. 대부분 50대, 60대였죠. 저도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쓸 겁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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