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때…깨끗함을 유지해야죠"
10월5일 '장사익 소리판'…4년 만에 세종문화회관 무대팬데믹 지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자리마종기 '우화의 강' 등 시 네 편에 곡 붙인 신곡 발표대중음악 기반 재즈·국악 아우르는 '장사익류'이르면 올해 말 정규 10집 녹음
장사익(73)은 가인(歌人)으로서 1994년부터 2년을 주기로 이런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긴 강을 건너느라 이번에 시간이 더 걸렸다. 4년 만인 오는 10월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장사익 소리판'을 펼친다. 집합금지와 거리두기로 멀어졌던 사람과 사람 사이를 치유하려는 듯 공연 제목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로 지었다. 사실 장사익의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사람에 대해 지독히 탐구하는, 노래가 깃들어진 인문학 강의이기도 하다. 그리움, 자화상 등 인간 본연의 감정과 본질을 톺아봐왔다. 이번엔 더 작정하고 사람을 향해 파고 들어간다. 얼마 전 리노베이션을 해 시(詩)처럼 변한 그의 세검정 자락 자택에서 만나 사람 이야기를 나눴다. 여전히 그는 차를 달이며 충청도 사투리로 느긋하게 이야기했다. '시간 농사'를 짓는 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정성이 가득했다. 다음은 장사익과 나눈 일문일답. -코로나19 기간에 많이 힘드셨죠? "노래를 하는 사람은 노래를 해야 사는 것인데…. 세상이 노래를 할 틈을 안 주고 사람을 만나게 하지 못하니까요. 사람을 만나는 게 원래 일상인데, 못 만나게 하는 게 일상이 돼 버렸죠. 아직도 정상은 아니지만 세상이 좀 풀어졌잖아요. 인간이 지혜롭게 잘 이겨낼 겁니다. 약도 개발하고 노래할 기회가 생기니 이제야 사는 거 같아요." -공연 제목이 '사람이 사람을 만나'입니다.
-공연 제목은 마종기 시인님의 '우화의 강'의 한 구절을 따왔다고요. "제일 앞 대목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죠. 물줄기는 끊어지지 않잖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물길이 틀면 계속 연결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화의 강'을 비롯 한상호 '뒷짐', 허형만 '뒷굽', 서정춘 '11월처럼' 등에 멜로디를 붙인 신곡 4곡을 이번 콘서트에서 부르시는 거죠? "2년에 한번씩 숙제처럼 주제를 가지고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어요. 시대적인 상황과 제가 바라본 삶 그리고 나름대로 주제를 가지고 공연을 펼치죠. 이번엔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사람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한상호 시인님의 '뒷짐'은 '한손으로는 아무래도 외롭나봅니다. 남은 길 가기가'라는 내용의 시인데, 함께 해야 한다는 소리죠. 이 곡을 공연 앞 서곡으로 배치해요. 처음으로 공연에서 기타를 치면서 부를 겁니다. 허영만 시인님의 '뒷굽'은 구두 뒷굽이 한쪽으로만 닿는 것에 대한 시예요. 구두 뒷굽이 그믐달처럼 기운다는 거죠. 인생이 한쪽으로 쏠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조하고 반문하면서 인생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서정춘 시인님의 '11월처럼'은 작대기 모양인 숫자 일(1) 두 개가 나란히 서서 의지하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번엔 70대 중반에 바라보는 인생이 주제예요. 가을의 황혼 속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거죠. 노래는 제 이야기이거든요. 그런데 시인이 제 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했네라고 발견을 했고 그 시인의 시를 취해 노래를 발표하는 거죠." -나훈아, 폴 매카트니 같은 분들도 칠순이 훨씬 넘어서 투어를 돌고 있는데 장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열정이죠. 열정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이고 노력할 수 있게끔 체력도 관리를 해요. 하나에서 열까지 관리의 측면이 필요하죠. 쉬운 건 아니에요. 칠십이 넘으면 몸이 노쇠해지잖아요. 성대 역시 마찬가지에요. 근육이 빠지죠. 찰랑찰랑했던 성대가 뻑뻑해지는 거예요. 막 힘을 주면 상처도 나고…. 항상 조심해야죠. 저도 두 세번 경험(성대결절)을 했잖아요."
"제작진 분들이 몇년간 연락을 주셨어요. 계속 거절하면 미안하니까 차 마시러 오라고 했죠. 그래도 여전히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프로그램 포맷을 모두 제게 맞추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자인 신동엽 씨는 상징이 있으니까 소개와 클로징 멘트를 맡고, 패널들 없이 하기로 했죠. 원래 한 시간 공연이었는데 40분이 늘어서 저와 막역한 사이인 최백호 씨와 노래 잘하는 소향 씨가 게스트로 나왔어요. 결국 즐겁게 했어요. 솔직히 전 무명인데 그 만큼 대우를 해주시니 당연히 고맙죠." -우리의 서정을 가장 한국적으로 노래하는 가수로 평가 받으시죠. 그런 면에서 진정한 K팝 가수 중의 한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흔히 말하는 K팝이 춤까지 아우르는 장르지만, 선생님은 목소리 자체로 춤을 추시니까요. (장사익은 45세의 나이에 첫 소리판 '하늘가는 길'을 공연했고, 이듬해 동명의 1집 음반을 발매하면서 부터 음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중음악, 재즈, 국악을 넘나들며 '장사익류'를 선보여왔다.) "지금 말하는 K팝은 저와 장르가 다르죠. 그런데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세상을 향해서 과감하게 정열적으로 뛰어나가 앞장서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젊은층의 활기찬 몸짓과 음악이 잘 융합돼 세계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팝을 떼로 지어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저도 20년 전에 외국에 많이 갔어요. 3년 전엔 러시아 모스크바 콘서트홀인 '돔 무지키'에서 단독 공연했죠. 객석의 90%가 러시아 분들이었어요. 한국의 전통 공연은 많이 접했을 지라도, 제가 부르는 한국의 대중음악은 처음 접했을 거라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깜짝 놀랐어요. 에너지가 있고 동양풍의 정적인 것도 있으니까요. 판타스틱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시를 바탕으로 한 노래이기 때문에 가사가 아름답다는 반응도 들었죠. 2시간을 퍼포먼스 하나 없이, 소리로만 채웠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관객분들을 만나십니다.(장사익은 서울 공연 이후 12월4일 오후 5시 전주 소리문화의전당, 같은 달 23일 대전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오른다. 대구, 청주, 안산, 인천 등의 일정은 추후 공개한다.) "음악 농사를 짓는 거예요. 숙제처럼 2년 동안 지어서 돌아다니는 거죠. 매 공연이 대동소이할 수 있지만 하지만 나름대로 새로워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죠. 나이가 들었다고 고여 있으면 안 됩니다." -2018년 9집 '자화상'까지 9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습니다. 10집이 나올 때가 된 거 같은데요.
-항상 여유가 느껴져 좋아요. "여러 가수들이 공연할 때 제 순서가 뒤에라도 저는 항상 먼저 가서 구경해요. 예전에 '가요무대'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제 순서가 뒤였는데 1부를 구경했어요. 그랬더니 사회자인 김동건 선생님이 왜 거기 앉아 있냐고 놀래셨죠. 그걸 지켜보는 게 즐거워요. 조명이 어떻게 들어오고, 스피커를 어느 쪽으로 돌리는지 익힐 수 있으니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 단독 공연이면 처음부터 리허설을 같이 해요. 공연장 근처 길거리도 활보하죠. 여기가 어떤 동네인지 알아보고 살피면 멘트를 할 때 실제 살아 있는 멘트를 할 수 있잖아요. 송해 선생님이 그러하셨죠. 저도 부지런한데 송해 선생님은 더 부지런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셨던 분이죠." -그런 정성이 깃들어 있으니, 선생님 공연은 단지 2시간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영원할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건 너무 과찬이세요. 그저 제 나름의 정성을 다해, 영혼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는 거죠. 노래하는 그 순간 자체는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들으시는 분이나 그 행위를 한 저의 모습은 영원히 남아 있을 거죠. 행복해하고 충격을 받고 감동을 받는 순간은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때죠. 그래서 행위자가 나름의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필요해요. 무당이 굿을 하기 전에 며칠을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권투 선수들이 시합 전 캠프를 차리고 몸을 만드는 것처럼요. 저 역시 그런 마음들로 공연을 준비해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정신을 한 곳에 기울이면, 어떤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하잖아요. 정성을 들여 맑게 준비를 하면 내 자신이 세상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제 노래를 듣는 분들, 주변 분들도 덩달아 좋아질 겁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