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3대 모니터탑' 다시 번쩍번쩍...백남준 '다다익선' 재가동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3개년 보존·복원 계획 완료손상된 브라운관 모니터 737대 중고 모니터 수급 수리·교체‘백남준 축제’ 시작…미공개 문서, 사진, 영상 아카이브 기획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백남준 '다다익선'이 다시 켜졌다. 1003대의 브라운관(CRT) 모니터가 탑처럼 쌓여 번쩍번쩍 웅장함을 자랑한다. 15일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로비에 있는 백남준 '다다익선'을 3년 만에 재가동했다. 손상된 브라운관(CRT) 모니터 737대를 중고 모니터로 수급하여 수리·교체했다. 지난 2003년 모니터를 전면 교체하는 등 약 30년 동안 수리를 반복해오다 2018년 2월 전면적인 보존·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었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이 '86년 아시안 게임, '88년 서울올림픽 등 국가적 행사와 맞물려 미술관 건축 특성에 맞게 기획·제작한 작품이다.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대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지름 7.5m의 원형에 18.5m의 높이로 설치되어, 한 층 한 층 축소되는 모양이다.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이 최초 제막했던 1988년 9월15일을 기념하여 15일 점등 및 재가동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1988년 진행된 제막식을 새롭게 해석한 퍼포먼스 공연(한국예술종합학교 최준호 교수, 창작그룹 노니, VOM Lab 참여)이 펼쳐진다. 재가동 기념 퍼포먼스는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youtube.com/MMCAKorea)를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고 전 세계 누구나 접속할 수 있다.
◆'다다익선' 보존·복원 3개년 계획 완료...15일 점등 재가동 2018년 2월 전면적인 보존·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한 '다다익선'은 3개년 보존 복원 사업으로 추진됐다.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했다. '다다익선'을 설치한 후 30년 이상 경과함에 따라 관련 기자재의 생산이 중단되고 중고 제품도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따르면 보존·복원은 ①1003대 브라운관(CRT) 모니터 및 전원부 등에 대한 정밀진단 후 ②중고 모니터 및 부품 등을 수급하여 손상된 모니터 737대를 수리·교체했다. ③더 이상 사용이 어려운 상단 6인치 및 10인치 브라운관 모니터 266대는 기술 검토를 거쳐 모니터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평면 디스플레이(LCD)로 제작·교체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가동시간을 주 4일, 일 2시간(잠정)으로 정하되 작품 상태를 최우선으로 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앞으로도 수시 점검과 보존 처리, 대체 디스플레이 적용성 검토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3년간의 '다다익선' 보존·복원 과정을 담은 백서를 2023년 발간하여 미디어아트 보존 처리 관련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재가동을 기념한 전시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이 열린다. 설치 배경부터 완공, 현재까지 운영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아카이브 200여 점과 구술 인터뷰 등을 선보인다.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해 백남준의 가장 대규모 비디오 설치작품인 '다다익선'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고 현재까지 운영되는 과정을 소장 아카이브 중심으로 보여주는 첫 기획전이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던 백남준(1932-2006)은 1984년 35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며 이후 한국에서의 활동 기반을 넓혀 나갔다.
‘즐거운 협연’이라는 부제는 백남준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며,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이 함께하는 최초”이며, “신구세대 앙팡 테러블들의 즐거운 협연”이라고 설명한 표현에서 착안했다. 이는 음악가, 무용가, 건축가, 엔지니어 등 수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의 창작 태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인 동시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다익선'을 설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협업했는지를 보여주는 이번 전시의 의도를 반영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백남준 작가의 대표작이자 과천관의 상징인 '다다익선' 재가동이 전 세계 백남준 작품 보존에 대한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며 “백남준 작가의 생애 및 예술적 업적을 기리는 전시, 국제학술심포지엄 등 백남준 연구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환기를 통해 한국미술의 다양성을 전 세계에 전송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비디오 아트 개척자 백남준...탄생 90주년 기념행사 잇따라 백남준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예술인'으로 불린다.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예술의 매체로 사용한 ‘비디오 아트’ 아버지로 세계 미술사에 등극되어 있다. 1932년 7월 20일 서울의 대부호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독선생으로 초빙해 피아노를 배울 정도였다. 1950년 일본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도쿄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후 1956년 뮌헨 부르비하막시밀리한 대학교에서 음악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1984년 1월 1일,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유명해졌다. 전 세계에서 약 25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는 기념비적인 위성쇼였다. 당시 국내에서도 생중계돼 그때까지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백남준을 일순간 천재적 아티스트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34년 만에 고국을 찾은 백남준이 TV 인터뷰에서 "원래 예술이란 게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거든요"라고 '폭탄선언'해 문화예술계에 파문이 일기도 했다. “예술은 사기”라는 말은 그의 대표 어록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2006년 미국 타임지 아시아의 영웅으로 선정, 수많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했던 그는 2006년 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 자택에서 74살, 숙환으로 별세했다. 10여년간 뇌졸중을 앓아온 그는 투병중에도 전위적이고 실헌적인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아, 예술가들에 귀감이 됐다.
백남준의 유해는 봉은사 법왕루에 안치되어 있다. 고인의 사진과 하영진 조각가가 주조한 작품인 백남준의 데드마스크(사후 고인의 얼굴을 청동으로 본떠 만든 상)가 설치되어 있다. 봉은사는 백남준을 기리는 많은 이들과 함께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후대에 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추모재를 2007년부터 지내고 있다. 올해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국립현대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