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비상③]"의무시장격리는 임시변통…수급 안정·전략작물 재배 확대"
농민단체, 작년 시장 격리 늦어…올해 수확기 격리해야초과 생산량 의무 시장격리하는 양곡관리법 개정 추진"과잉 생산분 매년 시장 격리 반복했다간 쌀값 무너져""소비 규모에 맞는 생산 이뤄져야…재배면적 관리 관건""분질미 재배 확대 올바른 방향…지속적인 지원 필요"
[세종=뉴시스] 오종택 기자 = 벼 수확기를 앞두고 멈출 줄 모르는 쌀값 하락세에 농민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시장 수요량 이상의 쌀을 시장격리 조치하고, 올해 공공비축 쌀 매입량을 늘리기로 했지만 쌀값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회에서는 초과 생산분에 대한 시장격리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당장의 쌀값 안정을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쌀 산업을 위해 장기적인 수급 안정과 재배면적 관리, 소비처 다양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올해도 풍작에 쌀값 하락 전망…"초과 생산분 적기 시장격리해야" 정부는 올해 들어 쌀값 안정을 위해 지난해 초과 생산된 쌀 27만t을 모두 시장격리하고, 추가로 10만t 이상을 격리했다. 여기에 공공비축 매입량 35만t을 더하면 75만t가량을 정부가 사들인 셈이다. 이 같은 조치에도 쌀값 계속해서 떨어졌고, 수확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도 하락세는 지속되고 있다. 올해 재배면적이 소폭 줄긴 했지만 2년 연속 풍작이 예상되는 만큼 농민단체는 수확기(10~12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적기에 초과 생산분을 시장격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올해도 생산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확기에 맞춰 지난해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시장격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양곡관리법에서는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이상 넘게 떨어지면 생산량 일부를 정부가 매입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는 전적으로 정부 판단에 따라 이행여부를 결정하는 임의조항이다. 지난해 20년 만에 벼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여름철 기상재해 등이 적어 쌀 생산량이 전년 대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풍작으로 쌀 생산량이 37만t 이상 늘었지만 정부가 시장격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쌀값 하락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 농민단체의 주장이다. ◆野, 의무 시장격리 법 개정 추진…만성적인 공급 과잉 초래할 수도 국회도 야당을 중심으로 농민단체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일정량의 초과생산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의무적으로 시장격리토록 법 개정 절차를 밟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위원장인 이원택 의원은 쌀값 안정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을 촉구하며 "쌀 시장격리 제도는 지난 2020년 변동직불금을 폐지하며 쌀값 안정을 위해 도입됐으나 지난해 쌀값 폭락이 예상되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며 "방식도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진행되며 오히려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무 시장격리가 단기적으로 쌀값 하락을 막을 순 있겠지만 자칫 만성적인 공급 과잉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업 전문가는 "매년 일정량의 초과 수확량이 나오면 정부가 이를 의무적으로 시장격리를 하는 것인데 만성 과잉 생산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어차피 생산량이 과잉되더라도 농협 수매 이후 정부가 적정한 값을 쳐주고 사들인다고 하면 수급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 전문가는 "벼농사만큼 기계화가 잘 되어 있는 농작물이 없어 농업인 수가 줄더라도 쌀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과잉 생산에 따른 시장격리가 매년 반복된다면 결과적으로 쌀값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수급 안정 가장 중요…분질미 등 전략작물 재배 지원 확대해야 시장격리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수급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생산량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소비량 감소폭이 더 크다보니 매년 재고가 쌓이고 있다. 가격 변동에 따라 들쭉날쭉한 재배면적도 수급 조절에 따른 관리가 필요하다. 김종인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근본적으로 쌀 가격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결국에는 수급이 맞아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쌀 소비 규모에 맞는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결국에는 지금보다 면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벼 재배 농가가 타작물이나 전략작물 재배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부 지원도 요구된다. 정부는 쌀 과잉 공급을 막기 위해 지난 2018년부터 벼 대신 콩 등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고 전량 정부가 수매하는 등 논의 타작물 전환 사업을 펼쳤지만 지난해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면서 3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내년에는 밀이나 콩, 가루쌀 등 식량안보 차원에서 전략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 직불제를 시행하기 위해 720억원의 예산을 새롭게 편성했지만 부족하다는 평가다.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전략작물 재배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며 "밀가루를 대체할 분질미 재배를 장려한다지만 가격도 비싸고 수요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 순간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농업연구기관 GSnJ 인스티튜트의 김명환 박사는 "우리나라 농업이 벼 재배에 가장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밀가루나 옥수수 수입을 대체하기 위한 분질미나 사료용 벼 재배를 늘려나가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며 "얼마나 전략작물로서 적합한 종자를 개발하느냐도 중요하고, 이를 꾸준히 재배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고심 중인 가운데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지 관심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중 쌀값 안정을 위한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최근 한국쌀전업농 전국회원대회에 참석해 "농촌 경제를 지탱하는 쌀값이 최근 큰 폭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정부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올해는 쌀값 안정을 위해 예년보다 더 빠르게 쌀 수확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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