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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동서양의 길목에서 꽃핀 와인

등록 2022-11-12 06:00:00   최종수정 2022-11-12 06: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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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무치(중국)=신화/뉴시스] 2017년 8월29일(현지시간) 촬영된 사진으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에서 한 농부가 포도를 건조하고 있다. ‘무셀레스’(Museles/Merceles) 혹은 ‘무살라이시’(Musalaisi) 와인이라 불리는 위구르족의 독특한 전통 와인 양조법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2022.11.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8000년전 조지아에서 시작된 와인은 코카서스 산맥 남쪽 방향으로 확산했다. 반면 카스피해 서쪽 연안에 있는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은 바다 건너 조지아와 직선거리로 500㎞ 정도로 가깝지만, 지리적·기후적 요인으로 교류가 늦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와인 양조역사는 기원전 4세기에 시작됐다. 반면 카스피해에서 더 멀리 떨어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는 이미 기원전 8세기에 와인이 들어와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이보다 훨씬 늦은 기원후 7세기 우즈베키스탄·중국 등과 교역하면서 와인 문화가 첫 선을 보인다. 이는 와인이 남쪽으로 전파됐다가 페르시아를 거쳐 다시 파미르 고원 위쪽의 중앙아시아로 북상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발생 이전, 동서양 간 문명 교류는 제한적이었지만 주로 아시아의 기마 유목민족이 주도했다. 하지만 기원전 329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깊숙한 곳까지 진출하면서 서양 문물이 아시아에 전파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현재 우즈베키스탄 지역인 사마르칸트를 지나 톈샨 산맥 근처,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까지 원정했다. 이로부터 191년 후, 장건은 여정곳곳에서 알렉산더가 아시아에 씨앗을 뿌린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와 마주친다. 와인도 그 중 하나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요절한 원인이 희석하지 않은 와인 6.5ℓ(750㎖로 약 9병)를 하루저녁에 폭음한 것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알렉산더는 와인을 좋아했다.

흉노는 동아시아 최초의 기마 유목민 제국으로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 세력이 소멸할 때까지 800년 동안 끊임없이 중국의 역대 왕조를 괴롭혔다. 진시황제가 만리장성 축조를 시작한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흉노는 기원전 2세기 초반에는 월지족을 몰아내고 신장지역과 현재의 간쑤성(甘肅省) 지역인 하서회랑(河西回廊)까지 진출한다. 기원전 141년 한무제는 유방의 백등산 포위전 이후 흉노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지하고, 흉노에게 원한이 있던 월지(月氏)와 동맹을 맺어 흉노를 협공할 전략을 세운다. 기원전 138년 월지로 갈 사절단장을 공개 모집했는데, 낭관(郎官)이라는 하급관리로 있던 장건이 뽑혔다. 장건은 100명의 수행원과 함께 월지가 있는 톈샨 산맥 너머 현재의 카자흐스탄 알마티 근처의 일리 강 유역을 목표로 장안을 출발한다.

하서회랑(河西回廊) 혹은 하서주랑(河西走廊)은 동쪽 오초령(烏鞘嶺)에서 시작해 서쪽 옥문관(玉門關) 사이 약 900㎞에 달하는, 호리병 모양으로 길게 튀어나온 평지이다. 양주(凉州) 혹은 서량(西凉)이 있는 지역이다. 양주는 중국 와인의 역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서역(西域)이라 함은 한 때 신장지역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돈황 서북쪽 100㎞ 지점에 있는 옥문관 바깥쪽을 의미한다. 이 지역은 신장(新疆)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정치·군사·문화·상업적으로 두루 중요한 국제 통로였다. 장건이 서역을 다녀온 후 한무제는 이곳에서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사군’(河西四郡: 무위(武威), 장액(張掖), 주천(酒泉), 돈황(敦煌))을 설치한 후 신장지역의 투루판까지 진출해 군대를 주둔시켰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배경이다.

월지로 가려면 반드시 하서회랑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장건 일행은 농서(隴西)를 지나 하서회랑의 중간 지점인 장액과 무위 사이 편도구(扁都口)에서 흉노에게 붙잡혀 왕이 있는 지금의 내몽고 후허하오터 지역의 용성(龍城, 노구수)으로 호송된다. 흉노왕 군신선우(軍臣單于)는 그를 죽이지 않고 억류했다. 장건은 그곳에서 흉노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여 아들까지 낳고 10년을 보낸다. 한나라 사신의 증표인 부절(符節)은 간직했다.

하지만 기원전 129년, 원래의 임무를 잊지 않았던 장건은 흉노 출신 수행원 감보(甘父)만 데리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탈출해 옥문관을 거쳐 다시 서역으로 향한다. 아내와 아들은 데려가지 못했다. 장건은 천산산맥 남쪽의 오아시스길로 불리는 사막길(天山南路)을 택한다. 이 길은 나중에 실크로드가 된다. 장건은 걸어서 갔다. 식량이 떨어지면 활쏘기에 능한 감보가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끼니를 이었다. 장건은 먼저 차사전국(車師前國)으로 불리던 신장 지역의 투루판을 거친다. 이때 투루판 사람들은 이미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지금은 위구르족이 투르판 인구의 75%를 차지한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를 따라왔다 잔류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투루판으로 들어와 관개시설, 포도재배법, 와인 양조법을 전수했다. 이때 재배한 품종도 ‘비니페라’다. 위구르족의 독특한 전통 양조법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무셀레스’(Museles/Merceles) 혹은 ‘무살라이시’ (Musalaisi) 와인이라 불린다. 포도즙을 짜 물과 섞은 다음 센 불로 천천히 끓인 후 여과해 밀봉한다. 40일 정도 숙성하는데 각 가정의 취향에 따라 구기자·홍화·뽕나무·장미·정향과 같은 향신료, 호랑이나 여우의 피 혹은 비둘기나 수탁의 피를 섞는다. 뼈가 붙어있는 양고기를 넣기도 하는데 고기가 삭으면 뼈를 걸러내고 마신다. 이를 ‘고기 포도주’라 부른다. 지금도 투루판의 시내 거리에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나무 터널이 곳곳에 있다. 투루판을 통과한 장건은 서쪽을 향해 여정을 계속한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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