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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에도 가난이 새겨졌던 쪽방촌...무료 치과진료에 웃음 '활짝'[현장]

등록 2022-12-18 06:41:00   최종수정 2022-12-19 08: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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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우리금융미래재단·행동하는의사회 공동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돈의동 쪽방 주민대상 치과진료 시작...보철치료까지 하는 건 전국 최초

"28개가 정상적인 치아 개수인데 여긴 평균 10개"

"소득수준이 한 단계 낮아질 때마다 치아는 두어 개씩 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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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돈의동쪽방상담소에 개소한 '우리동네 구강관리센터'를 방문해 진료를 받는 어르신과 인사하고 있다. 2022.12.0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부끄럽지만, 입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상담소 2층. 김홍일(66)씨가 잠시 망설이더니 마스크를 벗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입안을 보여줬다. 왼쪽 상악은 어금니가 하나뿐인데다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경제적인 여건이 안 돼서 (치과 진료를) 포기했다"는 김씨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상담소에 마련된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에서 무료로 치과 진료를 받았다.

'행동하는의사회'(의사회)는 이날 김씨의 치석을 제거하고 벌어진 아랫니 틈새를 좁히는 치료를 했다. 괴사한 치아 두 개는 뽑았다. 김씨는 "(이제야) 치료를 제대로 받는구나 느꼈다"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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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우리금융미래재단 이사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헌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 주민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쪽방상담소에서 진행된 '우리동네 구강관리센터 개소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우리금융미래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시내 쪽방촌 돌며 무료 치과 진료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지난 1일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돈의동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 진료를 시작했다.

센터는 서울시, 우리금융미래재단, ㈔행동하는의사회가 공동 운영한다. 시는 장소 제공과 사업 운영, 우리금융미래재단은 인건비와 운영 재원, 행동하는의사회는 치과의사 등 진료 인력을 각각 지원한다.

센터에는 치과 진료의자 2대와 파노라마(X-Ray) 등을 포함한 진료에 필요한 전문시설이 갖춰졌다. 치과의사 6명과 보조 인력 10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 의료진은 주 3회 이곳을 찾아 치과 진료를 한다. 490여명의 돈의동 쪽방 시설 주민을 대상으로 우선 진료를 실시하고 서울 시내 5대 쪽방촌 거주자 2400여명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내년 1월부터는 의료진이 직접 찾아가는 구강건강 관리 서비스도 시작한다.

쪽방 시설에 무료 치과 진료소가 만들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도 치과 진료 서비스는 있었지만, 쪽방 시설에 자리를 잡고 보철치료(손상된 치아에 인공적인 재료를 채우거나 씌워 치아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까지 하는 건 전국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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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 종로구 돈의동에 있는 쪽방상담소 5층에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마련됐다. 사진은 쪽방상담소 엘레베이터에 붙어있는 진료 안내문. 2022.12.12.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열흘 간 이곳에서 15명의 환자가 치료받았다.

쪽방 시설 주민들의 치아 건강은 대체로 좋지 못했다. 12일 센터에서 만난 권수현 행동하는의사회 치위생사는 주민들의 구강 상태를 묻는 말에 "이가 없으시다"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권 치위생사는 "보통은 28개가 정상적인 치아 개수다. 여기는 평균 10개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동헌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도 "다른 사람들은 치아가 아파서 병원을 찾는데 이분들은 치아가 없는 걸 해결하고 싶은 게 가장 크다"며 주민들의 구강 건강 상태를 전했다.

치아는 거의 없었지만, 유독 발치 치료가 많았다. 이날 만났던 5명의 환자 모두가 적어도 하나씩, 많게는 세 개까지 치아를 뽑았다. 권 치위생사는 "발치가 그냥 발치가 아니다. 치아가 다 썩고 뿌리만 남은 치아를 긁어내는 발치가 많다"고 설명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가 괴사해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던 박훈(52)씨는 진료 후 "진작에 치료 받았으면 좋았겠다. 말 그대로 앓던 이가 빠졌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쪽방 시설 주민들은 비용이 부담돼 치과 진료를 꺼려왔다. 쪽방상담소 2층에서 세탁 업무를 담당하는 김홍일씨는 "사실 이가 이 지경이 된 지 오래됐다. 어렵게 살다 보니까 포기 상태에 있었다"고 토로했다. 쪽방상담소 1층에서 만난 김규철(68)씨도 "여기(센터)에서도 돈 든다고 하면 안 하려고 그랬다"며 비용 부담으로 치과 진료를 포기해 왔다는 취지로 말했다김씨는 "치아가 없어서 흐물흐물한 것들 위주로 먹었다. 마스크를 벗기 싫어서 점심시간을 피해 사람들을 만났다"며 "이곳에서 틀니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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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시 종로구 돈의동에 있는 쪽방상담소 5층에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가 마련됐다. 센터에는 치과 진료의자 2대와 파노라마(X-Ray) 등을 포함한 진료에 필요한 전문시설이 갖춰졌다. 2022.12.12. f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가난은 치아에 새겨진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19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는 50명 중 1명(2.1%)이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반면, 소득 하위 20%는 7.5명 중 1명(13.2%)이 치료받지 못했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성인 구강검진 수검률이 가장 높은 지역인 울산에서는 2명 중 1명(47.6%)이 구강검진을 받았지만, 전남 지역은 4명 중 1명(22.1%)이 치료받지 못했다.

한 이사장은 "소득 수준이 한 단계씩 낮아질 때마다 이는 두어 개씩 없어진다고 보면 된다. 치아는 전염병이 돌아서 갑자기 빠지는 게 아니다. 지난 수 십 년간의 삶이 누적된 결과가 나중에 50, 60대가 돼서 나타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 이사장은 치과 치료가 시민들의 보편적인 권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법에 치과 의사의 임무는 치과 의료와 구강보건 지도라고 돼 있다. 그런데 국민도, 치과 의사도 그걸 까먹은 것 같다. 치과를 아픈 이를 빼는 곳이라고만 생각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치과 진료를) 제공하거나 받을 생각은 안 한다"고 말했다.

우리구강관리센터는 '치과'가 아닌 '센터'다. 치과의 높은 문턱에 가로막혀 치아를 방치했던 이들의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명칭에서부터 고심한 결과다.

시범 사업 단계를 이제 막 벗어났지만, 사업을 기획한 서울특별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의 의지도 확고하다.

최은선 돈의동쪽방상담소 행정실장은 "(우리구강관리센터는) 후원처가 없더라도 지속 사업으로 계속할 거다. 적어도 3년간은 계속 운영될 것 같다"면서 "(사업을) 더 확대하고 싶다. 치과뿐만 아니라 병원을 개원하는 데까지 생각하고 있다. 문턱 낮은 종합 병원을 하나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 쪽방 주민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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