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아, 케이트 블란쳇…'TAR 타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TAR 타르'의 제목은 어딘가 이상하다. 원제가 'Tár'이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한글로 '타르'가 돼야 하는 게 맞을테지만 같은 말이나 다름 없는 'TAR'를 굳이 붙여놓은 게 어딘가 어색하다.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 작명법은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다가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 제목을 다시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과연 튀어보이기 위한 제목이 아니라 'TAR 타르'라는 영화의 핵심을 찌르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원제를 한글 제목으로 바꾸게 되면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알파벳 'T' 'A' 'R'에 관한 작품이고, 영화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세 알파벳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TAR 타르'는 세계 최고의 지휘자 리디아 타르(TAR)에 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예술(ART)에 관한 영화이고, 또한 쥐새끼(RAT) 같은 비열한 권력에 관한 영화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나면 'TAR 타르'가 어떤 작품인지 당장이라도 알고 싶어지겠지만, 일단 케이트 블란쳇에 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는 그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블란쳇은 이 영화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세계 최고의 지휘자 '리디아 타르'를 맡았고, 그의 연기는 천의무봉(天衣無縫)에 가깝다. 블란쳇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말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에 관해 어떤 식으로라도 언급하지 않는 건 분명 직무유기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에 앞서 존재하는 연기라는 건 없겠지만, 'TAR 타르'에서 블란쳇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떤 연기는 영화를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많은 이들이 블란쳇 최고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블루 재스민'을 꼽을 것이다. 아마도 이 평가는 'TAR 타르'를 보고 나면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TAR 타르'가 블란쳇의 연기에 빚을 지고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 지휘자 경력의 정점에 선 리디아 타르를 천천히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이 작품은 스토리·스타일·촬영·편집·대사·메타포·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면에서 대체로 뛰어나다. 토드 필드 감독은 2007년 '리틀 칠드런' 이후 15년만에 돌아왔음에도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인간과 인간 관계 그리고 인간 감정에 대한 세밀한 탐구,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표현 방식을 고수하며 관객을 또 한 번 압도한다. 'TAR 타르'는 시작하자마자 그 야심을 드러낸다. 영화의 끝이 아닌 시작점에서 크레딧(영화 제작 관련 상세 정보)을 보여주는 전환을 통해 앞으로 보게 될 영상이 당신의 인식을 전복해 나갈 거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말러 교향곡 5번, 타르의 지휘 행위, 긴 대사, 롱테이크 촬영, 도전적 이미지 삽입 등을 뒤섞어 가며 관객을 흔들기 시작한다. 'TAR 타르'는 지휘차로서 최전성기를 보내던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이 전락하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는 그 텍스트보다는 콘텍스트를 더 유심히 볼 때 한층 더 풍성해진다. 필드 감독은 타르의 몰락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의 삶을 과연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인지 들여다 보는 동시에 한 줌 권력에 인간이 얼마나 치졸해지는지 직격하며, 인간 관계의 한계를 한탄하기도 한다(그렇게 TAR는 ART이면서 RAT이 된다). 필드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게다가 정치적 올바름, 강한 권력이 동반하는 거대한 불안, 미디어의 천박함 등을 포괄한다. 뛰어난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TAR 타르'는 어떤 방향으로 봐도 읽어낼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발견하느냐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필드 감독은 이처럼 각기 다른 결의 이야기를 '타르의 몰락'이라는 큰 기둥 위에 펼쳐놓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거나 돌출되지 않게 158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끌고가는 수완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TAR 타르'는 영상 매체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우선은 직접적인 대사로, 다음엔 에둘러 가는 대사로, 이번엔 노골적이고 과장된 미장센으로, 결국엔 소박한 미장센으로 다가온다. 아주 작은 몸짓이나 표정 변화로, 때로는 폭발할 듯한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은유할 때도 있고 직유할 때도 있다. 그저 고요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격정을 향해 치닫기도 한다. 애써 감정을 감추지만, 대놓고 드러낼 때도 있다. 'TAR 타르'는 대체로 차분한 영화이지만, 분명 쉬지 않고 최적의 표현을 모색한다. 다시 말해 이건 정중동(靜中動)의 영화다. 극 중 "음악은 움직임이야"라는 말은 필드 감독에겐 "영화는 움직임이야"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로 보인다. 이 작품은 타르와 그의 악단이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습하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기도 한데, 바로 그 말러 교향곡 5번은 'TAR 타르'의 소재이면서 동시에 근간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5번을 만들던 시기에 작곡가로서 최전성기에 있었다. 19살 어린 여성 알마 쉰들러를 만나 결혼한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말러의 삶은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알마가 떠났고, 건강을 잃었고 딸은 죽었다. 그리고 말러는 교향곡 5번을 작곡한지 10년만인 1911년 사망했다. 경력의 최정점에서 말러 교향곡 5번을 지휘하다가 나이 어린 여성들과의 관계 맺은 이후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타르의 모습은 말러의 삶과 어딘가 닮아 있다(타르 역시 딸을 잃는다). 말러는 생전 작곡가로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 약 50년이 지나서야 재평가돼 이제 그의 음악은 베토벤의 것과 견줄 정도로 자주 연주된다. 훗날 타르 역시 재평가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