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우리 와인의 역사, 그 시작은 고구려

등록 2023-03-18 06:00:00   최종수정 2023-03-18 08:17:23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퉁화=신화/뉴시스] 중국 지린(길림)성 동북부 퉁화시 지안에서 한 기자가 아이스 와인을 만드는데 쓰이는 냉동 포도를 촬영하고 있다. 2016.12.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역사의 기억은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기록이 없었던 시대는 역사 이전의 시대, 선사(先史) 시대다.

우리나라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BC 91년이다. 전한의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조선열전’(朝鮮列傳)에 나오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다. 그 후 ‘한서’ ‘후한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남사’ ‘북사’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 중국 사서에 부여·동예·옥저·삼국·발해 등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와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고려의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1145년 펴낸 ‘삼국사기’다.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고기’(古記, 11~12세기 추정) 등 우리나라 기록과 중국의 사서를 참고했다.

와인은 8000년 전 조지아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술의 양조는 그보다 천년 일찍 중국에서 시작됐다. 유적을 통한 추정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고대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찍부터 술을 마셨다. 고구려 주몽신화에서는 유화(柳花)가 만취해 해모수와 잠자리를 가져 주몽을 낳았다고 전해진다(이규보 저 ‘동명왕편’). 위진남북조시대 송나라 범엽(范曄, 398~445)의 ‘후한서 동이열전’과 위수(魏收, 507~572)가 저술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川), 삼한의 시월제(十月祭) 등 부족국가 시절 제천의식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는 내용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편에도 술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위서 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술을 잘 빚는다’는 기록도 있다. 기록은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술을 마셨을 것이다. 

BC 37년 건국된 고구려는 만주지역에서 700년간이나 통합된 국가형태로 존재했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한·수·당나라 등 통일국가는 물론, 삼국·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30개 이상의 국가가 등장했다. 북한에서는 고구려가 BC 277년 건국됐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900년이다.

고구려는 전성기 때 말갈(靺鞨)의 대부분과 내몽골 일대의 거란 세력 일부를 복속시켰다. 말갈은 진나라 이전에는 ‘숙신’(肅愼), 남북조 시대에는 ‘물길’(勿吉)로 불렸다. 말갈이라 불린 것은 수나라와 당나라 때이다. 발해가 멸망한 후인 송나라 때부터는 ‘여진’(女眞)이라 불렸다.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 이들은 세력을 키워 나중에 금나라와 청나라를 건국했다. 청나라 이후에는 만주족으로 불린다. 하지만 삼국시대 때 이들의 국가적 정체성은 고구려인이었다. 말갈족도 곰을 숭배했다. 함경도 북부에 살던 이들은 아예 한민족에 동화됐다. 한때 고구려 변방인을 비하해 말갈인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상 최초로 와인을 마신 사람들은 고구려 시대 말갈인들이다. 이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와인 역사는 고구려 때로 거슬러 오른다. 말갈족은 술을 매우 좋아했다. 하루 종일 술을 마셨고, 술 때문에 생명을 잃는 자도 흔히 있었다. 술에 취하면 깰 때까지 나무에 매달아 두기도 했다. 말갈 사람들의 축제나 관혼상제에서 술은 필수품이었다. 여자들도 자유롭게 술을 마셨다. 젊은 남녀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서로 술을 권하면서 인연을 맺기도 했다. 남자가 베풀 수 있는 술의 양이 부의 과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갈에선 술을 빚을 때 쌀을 씹어서 침으로 효모를 대신하는 양조법을 사용했다. 이는 퉁구스(Tungus)족으로,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 분포하는 골디(Goldi)족과 나나이(Nanai)족의 전통과도 관련 있다. 이들 역시 여진족의 후손인데, ‘혁철족’(赫哲族)으로 불리기도 한다.

말갈에서 와인을 빚었던 과정은 고대 중국에서 와인을 만든 방법과 유사하다. 우선 포도를 솥에 넣어 익힌 후 발로 밟아 으깨고 돌덩이 등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 즙을 낸 뒤 발효시켰다. 포도는 산포도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 와인이 상당히 대중화됐던 당나라에서 정통 와인용 비니페라 종 포도는 여전히 귀했다. 야생 배를 이용해 과실주를 만들거나, 짐승의 고기로 술을 담그기도 했다.

‘삼국지 위서 물길전(勿吉傳)’, 남송의 홍호(洪皓, 1088~1155)가 쓴 ‘송막기문’(松漠紀聞), 중국 문화 인류학자인 능순성(凌純聲, 1901~1978)이 펴낸 ‘송화강 하류의 혁철족(상권)’(1935)에 이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옛날 고구려가 위치했던 만주 일대는 현재 중국의 동북 3성(길림, 요녕, 흑룡강성)이 있는 지역으로, 중국의 주요 와인 산지 중 하나다. 흑룡강성의 동녕현(東寧縣)에서는 아이스 와인도 생산한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